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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본문
한국 작가 중에 편혜영을 좀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들을 특징짓는 문장을 써보자.
내장이 터져 나온 동물의 사체
타르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들러붙은 들개
하수관이 터져 오물에 잠긴 안방
비린내가 진동하는 숲
토사물로 가득한 뒷골목
그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그로테스크, 섬뜩함 같은 단어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특유의 공포로 버무려내는 재주가 있다는 평을 받는데, 내 생각엔 그냥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묘사하는 작가다. 아무런 가식도, 위선도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있는 그대로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나는 편혜영을 작품을 거꾸로 탐험하는 중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죽은 자로 하여금>은 여기에 실린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 대중을 배려한 착한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사육장 쪽으로>는 그녀가 두 번째로 내놓은 단편선으로 2007년에 출간했다. 내가 읽은 것은 21년에 나온 재판이다.
끔찍한 수준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중 최고라 할 수 있는데 비위가 약하거나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울 정도다.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에선 우리에서 탈출한 개들이 어린 아들을 갈기갈기 물어뜯는 장면이 나온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이유 없는 적의를 내뿜으며 거대한 트럭으로 위협하는 소설엔 깜찍하게도 <소풍>이란 제목을 붙였다. <밤의 공사>에서는 쓰레깃더미와 시커먼 들쥐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습지에 빠져 죽은 아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물론 여기에 실린 단편들이 모두 이렇게 섬뜩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섬뜩함이란 피부와 코를 자극하는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의미하는데, 즉 소셜의 주 테마인 불안이 항상 그런 식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몇몇은 회사, 동물원, 일반 가정집 같은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평범이란 게 상대적이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평하자면, 이 작품들에선 편혜영 자신, 그러니까 작가로서의 불안이 남김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이제 막 두 권의 단편선을 내놓은 소설가. 글을 쓰는 일은 얼핏 낭만적인 서사로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연쇄살인마에게 쫓기는 서스펜스에 더 가깝다. 거기에 도통 앞날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더해지고. 끊임없이 낙선과 거절, 비평에 온몸이 뜯겨나가는 슬래셔 무비가 따라붙는다. 특히 <소풍>과 <사육장 쪽으로>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는 주인공들에게서 이제 막 백지를 펼친 소설가의 불안이 진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멈추어 선 채로 허공에 매달린 이정표를 읽었다. 모두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이정표는 언젠가 도착할 도시의 이름을 알려줄 뿐,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소풍>, p.34)
이보다 더 완벽한 묘사가 있을까? 글쓰기라는 건 그렇다. 작가가 될 거라는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포기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의 신이 내가 얼마큼이나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 극단의 외로움을 이해하며, 나는 그녀의 책을 사서 읽는 것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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