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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본문
<벌거벗은 미술관>은 나영석 PD의 예능에 출연했던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의 에세이다. 내용의 깊이가 남달라 이 책을 그냥 에세이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아마 유구한 예술의 역사를 4개의 스냅숏으로 짧게 풀어내 겸손한 표현을 붙인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다른 진지한 인문서보다도 훨씬 재미있고 참신했다.
1장에서 저자는 '벗은 몸'과 '고전'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미술이란 거칠게 말해 한낱 장식품, 즉 물건에 불과하고 예술가 또한 오늘날처럼 고고한 지위가 아니라 시장에서 자기가 만든 것을 파는 장인에 불과했다. 물론 장인의 정신과 기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예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시절은 인류사를 통틀어 매우 짧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고 이전까지의 예술은 모두 무언가를 '위해' 창조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당시의 시대상, 윤리의식, 정치, 혹은 그 예술품을 주문한 사람의 의도와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이 말이 무엇이냐!?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보편적 미의 기준이 사실은 그 시대의 특수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나긴 중세 암흑기 동안 미의 기준은 누가 신의 위대함을 가장 잘 표현했는가로 정해졌다. 원근을 살펴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건 어불성설. 신은 항상 정가운데에, 누구보다 크게 그려져야 했다. 15세기 피렌체인들은 이 기준을 과거로 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훗날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는 '고대의 부활', 쉽게 말해 복고의 시대였다. 이를 인류 미학의 절대 기준으로 확립하는데 일조한 사람이 독일의 고전주의자 빙켈만이다. 그러나 그가 찬양해 마지않던 대부분의 그리스 예술품들은 아주 놀랍게도, 로마 시대에 복제한 짝퉁으로 알려져 있다.
2장은 미술사에 드러난 '웃음'을 탐구하는 장이다. 미술과 웃음이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참신한 관점이 흥미롭다. 오늘날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모두 김치와 치즈를 한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만들어내려는 건데, 왜 미술관에서 접하는 그 많은 초상화들에는 웃는 얼굴이 거의 없는 걸까? 오랜 시간 광대라는 직업이 차지해온 낮은 지위를 생각하면 웃음이 가진 의미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유명한 추리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이를 주제로 설전을 벌이는 두 수도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술사가 다시 웃음을 되찾게 된 건 세상에 인본주의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3장은 박물관의 역사를 다룬다. 프랑스혁명으로 촉발된 공공 박물관의 탄생. 약탈품 창고 노릇을 하며 확장해가던 제국주의 시대의 박물관. 이 장에서 우리는 각 시대의 정치상을 반영하며 성장해가던 박물관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나폴레옹 집권 시기 그가 이탈리아에서 약탈해온 고전미술의 대표작들이 루브르에 진열되면서 박물관의 무게 중심이 진귀한 물건들에서 순수미술로 옮겨가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요즘에는 확실히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의 힘이 센 것 같다(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 이즈리얼은 상대를 향해 "넌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구닥다리야"라고 외친다!). 인스타그램에 미술관에 갔던 사진을 올리는 건 본 적이 있어도 박물관에 간 걸 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는 873개의 박물관과 281개의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모두 엄격한 자격을 갖춰야 그 이름을 달 수 있다고 하니 난립하는 허접한 시설들도 아니다. 역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4장은 팬데믹 시대의 미술을 이야기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팬데믹은 역시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일 것이다. 흑사병은 유럽의 사회 구조를 바꿀 만큼 엄청난 규모의 역병이었다. 이런 시대의 미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술이라는 게 보편적, 절대적 형태를 지키며 인간에게 늘 같은 규범을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세상이 흑사병으로 망하든 말든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은 팬데믹으로 인해 존재 양식이 바뀔 정도로 큰 변화를 맞는다. 이런 걸 보면 예술이란 역시 인간과 외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욕망과 바람을 철저히 반영해 생존해가는 생활 밀착형 행동양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벌거벗은 미술관>은 저자의 참신한 관점과 안목이 돋보이는 책이다. 거기다 강연체로 굉장히 쉽게 쓰여 가독성이 높다는 장점까지 있다. 그림은 당연 풀컬러. 페이지 곳곳을 차지한 사진들 덕에 274 페이지라는 쪽수도 시원시원하게 넘어가니 올여름 휴가철에 들고 갈 책으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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