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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

WiredHusky 2022. 8. 21. 11:34

인삼은 조선 제1의 수출품이었다. 요즘 인삼 하면 다들 재배 인삼을 떠올리지만 당시에는 삼남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인삼을 재배하는 곳이 없었다. 거의 산삼을 캐다 팔았는데, 그 약효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알려져 중국과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18세기 전후 조선의 인삼은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과 함께 동아시아 삼각무역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인삼은 일본의 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그러나 그 삼각무역의 대호황으로 산삼은 씨가 마르게 된다. 상인들은 조선 제1의 수출품을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인삼 재배를 계획한다.

 

인삼 재배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 일이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수확하여 매출로 생산 비용을 메꿀 수 있는 다른 곡물들과 달리 인삼은 최대 6년은 길러야 하는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시작하면 6년 동안 내리 비용만 투입되는 농사. 비록 이문이 다른 작물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컸지만 이토록 긴 시간 동안 농사를 짓기 위해선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했다. 게다가 돈이 들어갈 구석은 또 얼마나 많은지. 1년을 키운 모종을 구입하고, 밭마다 해가림막을 설치하고, 적어도 4년 근부터는 몰래 캐가는 도둑들을 막기 위해 매일 밤 순찰을 돌아야 했다. 삼업은 웬만한 자본으로는 시작 자체가 불가한 고난도 농사였다.

 

따라서 당시 조선에서 삼포를 경영할 수 있는 건 장사로 대자본을 축적한 상인들 밖에 없었다. 조선의 상인이라 하면 우선 수도 한양의 경강상인, 평양의 유상, 의주의 만상, 동래의 내상, 그리고 개성의 송상을 꼽을 수 있다. 경강상인은 수도 서울이라는 조선 최대의 수요처를 등에 업었고 평양은 뱃길로 중국과 가까워 예부터 무역로의 중심이었다. 의주의 만상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을, 동래는 일본과 가깝다는 이점을 활용했다.

 

 

이처럼 자본과 경험을 소유한 상인 집단은 꽤 있었는데 어째서 송상이 조선의 인삼 무역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개성은 고려시대부터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선초에 개성 주민들 상당수를 한양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이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신왕조에 충성하지 않는 자들로 찍혀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다. 지역 수요만으로는 성장이 어려웠던 이들은 당연 해외로 눈길을 돌렸고 일부는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하는 행상으로 활약했다. 조선의 차별정책 때문이었는지 이들의 내부 결속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규모만으로는 첫 손에 꼽기 어렵지만 조직력만큼은 다른 지역 상인들과 궤를 달리하는 송상이었다.

 

송상의 힘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차변과 대변을 함께 적어 외상거래를 가능하게 한 복식부기를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계발한 뛰어난 상인이었다. 또 반드시 다른 점포에서 수년간 수습을 마친 뒤 가업을 잇거나 유능한 점원을 전문경영인으로 발탁하는 차인제도를 운영했다. 이는 경영과 소유를 분리하는 근대적 경영 방식이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신용만으로 돈을 꾸고 갚을 수 있는 시변제도가 아니었나 싶다. 시변제도는 중개인을 통해 거래하기 때문에 돈을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이 서로를 전혀 몰랐다. 금전거래가 인정에 따라 이뤄지면 자본은 비효율적으로 분배되기 마련이다. 개성상인들은 이처럼 일찍부터 근대적인 경영, 금융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사관은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수 없었던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배가 도왔다고 주장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들을 송상의 역사에서 찾는다.

 

송상의 현대적 상업 제도는 삼포 경영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딘가에 돈이 있는 사람은 있다. 어딘가에는 인삼을 재배할 줄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돈이 있으면서 인삼을 재배할 줄 아는 사람은 적다. 송상은 이 둘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소비자의 needs도 파악할 줄 알았다. 송상은 인삼을 쪄 홍삼으로 가공했다. 이는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 보관이 힘들었던 인삼의 단점을 메꿈으로써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근대와 현대 상업을 가르는 차이가 수요를 따르느냐, 그것을 창출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후기와 일제를 거쳐 홍삼은 전매제도가 실시됐고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는 일 년에 생산할 수 있는 홍삼의 양을 조절했다. 장사치에게는 더 벌 수 있는데 못 버는 것만큼 답답한 상황이 없을 것이다. 송상은 그동안 쩌리 취급을 당해오던 백삼에 주목했다. 홍삼에 비해 질 낮은 제품으로 인식되던 백삼을 팔기 위해 송상이 시도한 브랜딩, 마케팅 기법들은 현대의 기술들을 무색해할 정도로 화려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돈을 벌기 위한 욕망만큼 인간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요인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은 논문이다. 남보다 부족한 조건을 타고난 개성인이 굴레를 박살내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뜨거운 마음으로 그리기보다는 수치와 사료로 걸러 차갑게 식힌 말들을 주된 서술 방식으로 취한다. 건조하고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만큼 객관적이라는 장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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