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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충돌 본문
<제국의 충돌>은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급랭한 미중 관계 파국의 원인을 분석한다. 현재 주류 평론은 그 원인을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찾는 것 같다. 자유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독재 사이의 충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이 독재국가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물론 시황제가 3연임을 강행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주석만 바꿔가며 당이 독재를 감행한 게 현대 중국의 역사 아니던가!? 게다가 경직성으로만 따지면 1989년 천안문의 인민을 '인민해방군'이 탱크로 깔아 죽인 덩샤오핑의 중국이 훨씬 권위주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과 중국은 공존을 넘어 단일경제체로 향할 만큼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훙호평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본이 문제라고 말한다. 1990년대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인권과 환경을 지키지 않는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하려 했다. 당시 그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로비를 벌인 건 AT&T와 모토로라 같은 가장 미국적인 기업들이었다. 시장 개방을 약속한 중국 정부의 사주를 받아 해당 기업들은 총력전을 벌였고 그에 힘입어 중국은 현재 지구 최악의 환경 파괴국이자 인권 탄압국이 됐다.
중국이 얻은 건 세계 제2의 경제국이라는 위상이었지만 미국 기업들은 대부분 배신을 당한다. 약속은 많은 부분 파기되었고 진출에 성공한 기업들도 지적재산권 침해를 당하거나 사업체를 강제로 중국 기업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수출로 제국을 완성한 중국은 미친 듯이 물건을 팔아 달러를 쓸어 모으고 미국이 발행한 채권을 사들여 다시 그 돈을 돌려줬기 때문이다.
'차이메리카'에 균열을 낸 건 2008년에 폭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달러를 찍어내 구제 금융을 제공했고 전 세계 경제는 붕괴했다(탈중앙화를 모토로 내 건 비트코인이 바로 이때 탄생했다). 쏟아져 들어온 달러에 화폐 가치가 하락하니, 달러를 많이 보유했거나,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는 어려워졌고 두 조건 모두에 해당하는 중국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출을 풀었고 이 돈은 기업으로 흘러가 가짜 수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실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 이 거품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주변의 개발도상국으로 눈을 돌렸다. 차관을 제공하고 해당 국가가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들에 중국 기업의 기술과 상품을 이용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중국은 국내에 쌓인 잉여 생산물을 개발도상국에 떠넘겨 자국의 거품을 꺼뜨리려 했다. 이것이 바로 '일대일로'라 불리는 중국몽의 본질이다.
자본의 확장과 함께 중국은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요충지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었다.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중요한 위치에 두 국가 간 군사적 갈등이 조성됐다. 바야흐로 '신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훙호평은 이 갈등의 해결을 위해선 빈부격차 해소가 답이라고 말한다. 개념적으로만 보면 최근 중국이 선언한 '공동부유'나 미국의 '리쇼어링'이 중요한 열쇠라는 말이다. 빈부격차가 해소되어 내수 소비가 증가하면 잉여 생산물과 자본은 모두 국내에서 소비될 수 있다. 굳이 해외로 나가 타국과 충돌하지 않아도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둘 모두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훙호평은 '공동부유'가 중국이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초거대 민간 기업을 탄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리쇼어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과 미국의 디커플링은 가속화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생산 기지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리쇼어링) 보다는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제국의 충돌>은 두께만큼 명쾌하고 간략한 책이다. 어려운 내용도 하나 없고 앉은자리에서 해치울 만큼 짧기도 하다. 심지어 번역까지 괜찮다. 깊은 내용에 쉬운 독해, 훌륭한 번역까지 3박자를 갖춘 책은 일단 읽고 봐야 한다. 지금부터 훙호평 정주행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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