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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의 정치 본문
전 세계에 극우가 만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와 그들의 정치>는 파시즘 정치가 동작하는 방식, 그들이 어떻게 멀쩡한 시민들을 극단으로 이끄는지를 분석한다.
파시즘 정치의 시작은 구별이다.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선 우리가 특별해야 하므로 한 민족의 역사가 완전한 허구에 기반해 신화화된다. 보통 순혈에 대한 망상은 히틀러가 거의 모든 악명을 뒤집어쓴 덕분에 내로남불에 빠지기 쉬운데, 사실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심지어 왕까지 외국인과 결혼한 사례가 수두룩한 역사를 보고도 우리 배달인이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을 갖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국가는 조작된 신화를 교육, 문화에 대대적으로 침투시켜 선전을 시작한다. 이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민족혼을 부정하는 배신자. 진실은 매도, 비판은 폭력의 대상이다. 허구를 중심으로 우리와 그들의 역할이 정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이 신화가 주로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우리'를 자극하는 건 '피해의식'이다. 우리는 군말 않고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어올렸는데 '너희'는 우리가 이룬 걸 뺏어가려고만 한다. 노동조합은 귀족노조로 둔갑하고 복지 혜택의 증가는 '게으름'의 증거로 제시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탓에 분배와 경제 정의는 아주 쉽게 공산주의와 연결되어 땀 흘려 가꾼 국가의 근본을 통째로 북쪽에 넘기려 한다는 망상에 공격당한다. 이런 공격을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바로 그 공격 대상의 가장 큰 수혜자인데도 말이다.
파시즘 정치가 지키고 퍼뜨리려는 거짓 역사는 사실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유지하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으며, 파시즘은 그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공포심을 이용해 강력한 지지자들을 포섭한다.
사실 자유와 민주주의가 넘치는 요즘 세상은 전통적 가부장들에게 그리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늘어난 성평등은 오랜 시간 경제 주체로서 군림했던 가부장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페미니즘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고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은 내 일자리를 뺏어가는 적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건 바로 성적 불안이다. 성소수자의 등장은 가뜩이나 사회에서 역할을 잃고 불안에 빠진 가부장이 그나마 유일하게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조차 역할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묘사하는 것도 바로 이 불안을 추동하려는 파시즘 정치의 전형적 현상이다. 그들로부터 나의 아내, 딸, 누이를 지켜 더러운 피가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은 오랜 시간 가부장의 역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여성, 이민자는 파시즘 정치의 주요한 먹잇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가부장적 질서를 지키는 한 축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에서 퀴어 축제가 열렸을 때 가장 열렬히 반대했던 건 '엄마'들이었다.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도 바로 '엄마부대'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지정된 역할을 수행하는 한,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여성은 추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열녀, 효부, 현모, 양처라는 역할이 바로 여기에서 탄생한다. 나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행해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정의한다.
파시즘 정치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단단한 토대를 형성한다. 완전한 허구에서 탄생한 신화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자리를 찾아가며 손쉽게 한 국가를 찢어놓는다. 중요한 건 이성을 지키는 일이고, 만연한 비정상을 어느새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경계하는 것인데, 말은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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