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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본문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더 이상 보탤 말이 필요 없는 완벽한 문장이다.
하라 료라는 작가는 처음인데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계에서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사진을 보니 콧수염이 멋있다. 작가의 얼굴을 봤기 때문인지 시리즈의 주인공 사와자키의 말과 행동에서 저절로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의 시선 따윈 상관없고, 속세에도 큰 관심이 없지만, 자기 일에 확실한 원칙이 있고 고집스럽다. 사무실엔 이미 죽은 파트너의 간판이 여전히 달려 있다. 페인트 칠은 다 벗겨졌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블루버드. 그럼에도 궁색해 보이지 않는 멋쟁이가 바로 사와자키란 탐정이다. 그에게서 하라 료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그저 착각일까?
배경은 버블경제가 무너진 후로 보이나 세계를 거의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일본인의 자신감이 여전히 캐릭터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여유 있고, 종종 연극적 허세까지 보인다. 별것도 아닌 말에 '나루호도'라고 읊조리며 쓸데없이 무게를 더하는 일본 드라마 같은 분위기라든가, 적들이 코 앞에 다가올 때까지 낮잠을 자다 문득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켜며 그들을 초토화시키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라든가, 꼭꼭 숨기는커녕 굳이 굳이 수사 기관을 맴돌며 단서를 남기고 수다를 떠는 자의식 과잉의 만화 속 범죄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뭔가가 문장 곳곳에 배어있다. 이런 도드라짐이 종종 몰입을 방해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일 아쉬운 점은 악인의 실체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점이다. 전말이 밝혀지고 나면 정말로 이자가 사건을 이토록 복잡하게 꼬을 수 있을 만큼 능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무리 사람의 약점을 잡고 쥐어짠다 한들 내 수족처럼 부리며 여러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 공백을 단단하게 메워줄 캐릭터들의 동기, 심리 묘사, 관계가 부족하다 보니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고 머쓱한 장면을 연출한다. 독자는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주춤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탐정 사와자키의 개성만큼은 확실히 독보적이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시원시원하다. 트릭과 추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캐릭터와 구성에 더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다. 그 힘이 이야기에 재미를 싣고 달리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고민 없이 덮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레이먼드 챈들러의 팬이라면 하라 료에게도 한 번쯤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누가 '필립 말로'의 팬 아니랄까 봐 사와자키에게도 그의 냄새가 느껴진다. 다다미 방 위에 앉아 호지차를 마시는 말로를 보는 것처럼 이질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묘하게 섞인 색채가 오히려 신비로운 매력을 풍긴다.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하고 재미없는 소설은 태워야 한다. 필립 말로와 사와자키는 소설 속에서 살아남았고, 소설 밖에서 화형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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