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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본문
가히 <닥터스>의 IT 버전이라 부를 만하다. <닥터스>는 <러브 스토리>로 유명한 에릭 시걸의 소설로 하버드 의대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 바니 리빙스턴과 로라 카스텔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서로를 그냥 친한 친구로 생각했으나 각자의 삶을 수십 년 살고 나니 역시 나에겐 너밖에 없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산다는 이야기다. 둘 사이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매력적인 흑인 친구 한 명이 있어 중요한 구심점이 돼준다. 이 흑인 친구는 똑같이 의사를 꿈꿨으나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해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결국 외과 의사를 포기하고 변호사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되니 읽기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바니 리빙스턴을 샘으로 로라 카스텔로를 세이디로 흑인 친구를 마커스로 대체한 뒤 각각을 MIT, 하버드의 컴공과로 바꾸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이야기를 얼추 맞출 수 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샘은 한국계, 세이디는 유대인, 마커스는 일본계다. 이들은 <닥터스> 시대에는 최고였지만 이제는 한물 간 '의사'대신 게임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택한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각자의 역할은 <닥터스>를 빼다 받은 듯 선명하다.
두 소설을 비교하며 나는 감초 역할을 하는 세 번째 친구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 얼마나 유용한지 배울 수 있었다. 이 친구는 때로는 두 사람의 갈등을 조절하고 때로는 위기에서 구해내며 그러면서도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한다. 마치 고대 연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이야기가 막히거나 지루해질 때쯤 전능을 발휘해 활로를 열어준다. 그러다 보니 이 친구는 돈도 많고 외모도 뛰어나며 심지어 지적으로도 두 사람을 능가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과는 어떠한 이성적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성의 신이 캐릭터로 형상화한 것이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마지막 부분에 살짝 변주를 가해 세 사람 사이에 긴장을 형성한다. 그 긴장에서 튀긴 불꽃이 결국 우정의 숲을 모두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지만 늘 그렇듯 새로운 희망은 절망에서 피어오른다. <라스트 제다이>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로>로 이어지듯이.
이 방식이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 세련되게 윤색된 면은 있어 보인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의 구조를 가져와 지금 시대에 맞춰 리모델링하는 것. 이것만 잘해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구나. 사람들이 그토록 지루한 희곡을 쓴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찬양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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