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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 본문
수컷들의 영원한 친구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렇게 썼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며, 진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난자와 정자에서 비롯된다."
성과 성역할에 대한 신화는 뿌리가 깊다. 여성은 조신하고 신중하며 모성으로 알을 품는다. 알을 품으려면 모성이 있어야 하는데 모성은 말 그대로 엄마에게만 존재하므로 출산과 육아는 암컷의 몫이다. 그것은 자연이 정해놓은 섭리다.
암컷은 조신하고 신중하기 때문에 짝짓기 때도 어두운 관객석에 앉아 신나게 춤을 추는 무대 위 수컷들을 수줍게 바라본다. 수컷은 포식자의 눈에 잘 띄는 화려한 깃털을 휘날리며 가장 마음에 드는 암컷 앞에 선다. 암컷은 못 이기는 척 수컷의 손을 잡고 으슥한 풀숲으로 이동한다.
선택은 수컷의 몫이므로 진화의 바퀴를 굴리는 것도 수컷이다. 암컷은 그 선택을 받아들일 뿐이다. 생물학을 지배해 온 이 가부장적 프레임은 우리가 이 쇼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여지를 삭제해 왔다. 혹시 암컷은 관객이 아니라 심사위원이었던 게 아닐까? 수컷이 그 무의미하고 에너지 비효율적인 행동을 수백만 년간 유지해 온 이유는 선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택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말이다.
야생에는 강간이 횡행한다. 암컷이 강제로 교미를 당하는 모습은 정말 처참하다. 작은 암컷이 몸짓이 큰 수컷을 당해낼 수는 없다. 이 관점에서 암컷은 결국 착취당하는 성이며 진화의 바퀴를 굴리는 건 다시 수컷이 몫이 된다. 그러나 이 사건 전후로 벌어지는 암컷의 '교활한 음모'는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 암컷의 생식기는 능동적인 기관이다. 그들은 "생리, 화학적 특성을 이용해 정자를 보관, 분류, 거부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수컷의 정액은 갖다 버리고, 선택된 정자는 난자로 가는 직통 노선에 올라 적극적으로 이동 속도를 높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로 같은 통로 속에서 헤매다 끝나게 할 수도 있다."(p. 199) 게임을 시작하는 건 수컷이지만 이기는 건 암컷이다.
작고 수동적이며 안전지향적이라 모험과 도전을 모르는 암컷과 자기의 우수한 유전자를 사방팔방 뿌리도록 진화한 수컷. 이 성신화는 수컷의 외도와 암컷의 정절을 자연의 섭리로 정당화했다. 암컷은 작고 약하며 수컷은 크고 강하다는 편견은 수컷 중심의 위계와 지배를 당연시하는 구실이었다.
세상에는 이 신화들이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짜 뉴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과학계가 남성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애플 TV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에서 주인공이 한 남자 화학자에게 생각나는 여성 과학자의 이름을 아는 대로 대보라고 말한다. '마리 퀴리'. 나와 그 남자는 이 이름 외에 어느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생물학자들은 기존의 이론을 뒤집을 반증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단순한 예외로 치부해 왔다. 벌과 개미는 여왕을 정점으로 한 사회를 구성하는 '매우 특이한 생물'이다. 수컷보다 암컷이 훨씬 크고 강한 사마귀는 '아주 보기 드문 곤충'이라 할 수 있다. 마다가스카르 숲에 터를 잡은 베록스시파 여우원숭이 사회에서는 알파 암컷이 무리를 지배한다. 그곳에서 수컷은 이등 시민이다. 포유류가 구성한 공동체에서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문 일'이다.
<암컷들>은 이런 신화들이 진화생물학의 최전선에서 어떻게 박살 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암컷들의 놀라운 생태를 읽고 있으면 이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심지어 자연계에는 명확한 암수 구분조차 그리 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남과 암수로 구분된 세계야말로 진정 '예외'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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