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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본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좋아했다. 야미쿠로가 득시글한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고, 이상한 박사님과 어시스턴트가 등장하고, 탐정이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그야말로 모험활극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은 중간중간에 '세계의 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세계의 끝'에는 마라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단물 빠진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참 모험을 즐기다 이 '끝'을 맞닥뜨리면 장로드래곤 앞에서 한타가 벌어진 순간 PC 전원이 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정확히 '세계의 끝'의 확장판이다. 1, 2, 3부로 나뉜 이 소설에서 나는 은근히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대했다. 그래, 이 지루한 1부를 클리어하고 나면 반드시 원더랜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기대는 완전히 박살 났다. 768페이지 내내 기다려온 장면은 단 한 문장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키는 이 작품에 어떤 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에 발표한 중편 소설 하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곳에 발표한 글들은 전부 출판까지 이어졌으나 이 작품만은 예외였다. 작가로서의 역량이랄까? 뭐 그런 게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후 하루키는 이 모티브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풀어냈고 그중에 하나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 하지만 응어리는 여전했고 그것이 바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으로 등장했다. 이로써 하루키는 수십 년 간 담아 온 체기를 모조리 토해냈다.
70세가 넘은 노작가에게는 홀가분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인 나에게 이 소설은 고구마에 고구마를 씹어 삼킨 듯 답답했다. 베레모에 스커트를 즐겨 입는 도서관장이라든가 내 몸에서 분리된 그림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죽어서 유령이 된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특유의 시그니처를 곳곳에 찍어뒀지만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던 적은 이 작가의 책 중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이 꾸준한 작가는 원하는 글을 어디든 발표할 수 있고 심지어 출판까지 가능하다. 그것이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습작이든, 징검다리든, 아니면 완전히 실패한 것이든. 나는 이 책이 두세 권으로 분권 됐다면 아마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단장 죽이기>가 딱 그랬다. 그런데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꾸역꾸역 읽고 나니 <기사단장 죽이기>에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이것보다 재미가 없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The World of Haruki'를 꾸준히 탐험해 온 사람이라면 이 기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느끼며 정상참작이 가능하겠지만 중간에 뜩하고 끼어든 뉴비들은 당혹스럽지 않을까 싶다. 하루키에 대한 혐오는 대부분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다. 인생에 늘 흥망성쇠가 있듯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누군가는 '망'에서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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