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본문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WiredHusky 2011. 2. 23. 07:30




기타노 타케시는 코미디언이다. 무엇으로 데뷔했냐하면, 만담이다. 내 세대에서 만담이라고하면 많이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도대체 뭘 어떻게 했다는건지 알 길이 없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의 '하나와 앨리스'를 보면 주인공 아오이 유우가 사랑하는 잘생긴 남자 선배가 바로 만담 동아리의 회원이라는걸 볼때, 일본에서는 이 만담이라는 것이 모든 세대가 보고 즐기는 인기있는 오락거리라는걸 추측해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만담을 잘해서
전국적인 인기를 모았다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어쨌든,

택시 기사에서 다방 웨이터 백화점 점원에서 앨리베이터 보이까지, 블루 칼라 노동직을 전전하던 기타노 다케시는 1974년 자신이 일하던 그 앨리베이터에서 비트 기요시를 만나 만담 콤비 '투 비트'를 결성한다.




첫해 '투 비트'는 주로 스트립쇼의 오프닝 공연을 했다. 차츰 이름이 알려지자 콘서트의 바람잡이를 책임지게 됐고, 그곳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쳐 라디오와 TV 만담에까지 얼굴을 비췄다.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지고 난 뒤에는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에 출연하다 감독을 하게 됐다. 감독을 시작한 8년째에 '하나비'를 만들었으며 영화는 54회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동안에도 다른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동시에 TV 쇼를 진행했다. 일년에 25억엔을 벌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얼굴뼈와 피부가 바스러졌다. 말 그대로,

바스러졌다.

모두가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혼의 발걸음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강 위로 잔잔한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가려는 순간 기타노 다케시는 기적적으로 삶에 복귀한다.




앨리베이터 보이에서 정상의 연예인까지, 페인트공의 막내 아들에서 최고급 포르쉐까지, 그리고 정력적인 활동가에서 사지를 헤매는 중환자에 이르기까지, 기타노 다케시가 그리는 삶의 궤적은 그 큰 낙폭만큼 깊은 맛을 내며 읽는 이의 인생을 자극한다.

기타노 다케시가 그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사람들에겐 타인의 파란만장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단순화된 인생은 그대로 싸구려 미담이 되어 두루두루 소비된다. 이것이 소비되는 동안 포장지는 더 화려해지고 그 속에 담긴 노력의 빛은 갈수록 흐려진다.

기타노 다케시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그가 밑바닥 출신의 천재 엔터테이너라는 사실만 기억하지 그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알지 못한다. 밑바닥 인생이라는 표현에는 가슴을 터지게 만드는 굴욕이라던가 나라는 존재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경멸과 무시, 뼈가 부러지는 노동의 고통 등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분노와 울분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어떠한 힌트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건 그저 단어에 불과할 뿐이다. 

껍데기만 남은 미담은 급기야 사람들을 오해의 종착지로 몰고간다.

'다케시씨, 당신은 뭘 해도 성공했을 사람입니다.'
'당신은 참 재능있는 사람이로군요.'
'원래 그런거에요. 세상에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천재들이 하나 둘쯤 꼭 있단 말입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만담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심할 때는 여자와 있으면서 베갯머리에 둔 노트에 메모를 한 적도 있다.
젊을 때였으니 머리 한쪽에서는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항상 만담 소재를 생각하고 있어서, 내일 보여줄 새로운 소재가 생각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노트에 썼다.'

삶과 죽음, 다케시 미학의 비밀, 세파를 찌르는 촌철. 이 책에 담긴 다케시의 육성을 요약하라면 이렇게 펼쳐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슴에 새겨지는 한 마디는, 천재라 부르는 세상 사람들의 헛소리를 뒤로하고 담담히 전하는, 여자와 만담에 대한 일화 몇 문장. 나에게는 오히려 이것이 이 책을 선택했음에 후회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감동이라 할 수 있겠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