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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본문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의 신판이다. 페이지는 6쪽, 무게는 9그램이 줄었다. 풀컬러에 빳빳한 종이다. 글보다 그림이 많아 숨 쉬듯 읽을 수 있다. 나는 구판과 신판을 모두 소유했고, 당연히 둘 다 읽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렇게 다를 줄은.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막 싱글 몰트에 입문했던 때라 좀 더 심취했달까?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위스키 진열장을 뛰어다니던 초심자의 열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쪽수도 훨씬 많았다고 기억했다. 신판은 구판의 내용을 발췌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위스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탓일 테다. 그때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술들이 줄줄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이 중 모르는 브랜드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마셔보기까지 한 게 꽤 되니까,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당시 쓴 서평을 보니 내 최애 싱글 몰트는 글렌모렌지 시그넷, 꼬냑은 까뮈 X.O였다. 지금도 그런가 하면, 글쎄 고민을 하게 된다. 싱글 몰트가 아니면 안 마시던 시절도 있었는데 최근에 히비키를 마시고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싶을 정도로 전율이 이는 맛이었다. 아일랜드 위스키가 궁금해 우연히 마셔본 부쉬밀도 기가 막혔다. 확실히 나는 부드러운 목 넘김에 알코올향이 강하지 않은 걸 좋아한다. 꼬냑은 미안하지만 헤네시로 갈아탔다.
당시엔 싱글 몰트보다도 꼬냑을 좋아했지만 지금 당장 바텐더가 '한 잔 줄까?'라고 물으면 '히비키'하고 답할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경험은 쌓이고, 인간은 바뀐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You need cube?"라는 질문에
"No thanks. With just water, please."라고 대답한다는 것. (p.83)
이 책을 읽고 위스키에 너무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 향과 풍미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쓰디쓴 알코올임에는 변함이 없다. 하루키는 아드벡을 향해 '영혼의 한 가닥 한 가닥까지 모조리 선연하고 극명하게 부각하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p.43)이라 말하지만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없고, 있더라도 피트가 없는 온화한 계열을 즐겼다면, 당신이 아드벡을 마신 뒤 내놓을 감상을 나는 100% 예상할 수 있다.
우웩!!!!!
세상은 넓고, 술의 세상은 더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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