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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그의 빛 본문
<위대한 그의 빛>은 <위대한 개츠비>의 오마주다. 완전히 동일한 구조에 동일한 캐릭터를 배치하고 똑같은 주제로 감아올려 그 유명한 그린 라이트 위에 올린다. 개츠비가 그랬듯, 그의 빛은 서서히 하강하여 어둠 가득한 지하로 가라앉는다.
개츠비의 롱아일랜드는 성수로, 데이지의 웨스트에그는 압구정으로 변한다. 밀수업자였던 개츠비는 미국에서 혈액 한 두 방울로 주요 암을 조기 진단하는 기술로 크게 성공한 뒤 암호화폐를 개발해 국민적 영웅이 된 벤처 사업가로 활약한다. 테라노스와 테라폼랩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 성공이 얼마나 위태로운 난간 위에 서 있는지 알 것이다.
개츠비가 위대했던 이유는 그 모든 성공이 전부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전설적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의 미국이었고, 때는 바야흐로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번영 속에서 소비와 유행을 숭배하던 시기였다. 향락과 탐닉. 매일 밤 터지는 샴페인 속에서 오히려 정신은 굶어 죽어갔다. 이러한 시대에도 개츠비는 '사랑'이라는, 냄새나고 촌스러운 가치를 자신의 심장과 바꿔 넣었다. 오로지 데이지를 위해,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개츠비는 부와 소문을 쌓아 올렸다.
한국의 개츠비, 제이 강도 똑같다. 대학 시절 딱, 한 번 만난 여자에게 완전히 반해 사귀던 여자 친구마저 버리고 도피 행각을 벌였다. 똑똑하지만 가난했던 그는 결국 데이지(연지)를 포기하고 입대한다. 연지는 몇 년 뒤 부자를 만나 결혼한다. 벤틀리를 몰고, 80억짜리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사는 남자를 만나서.
이제 차이점을 얘기해 보자. 성수와 압구정의 인간들은 미국의 그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50대 초. 제이 강의 심장 연지는 심지어 스무 살이 훌쩍 넘는 아들을 하나 두고 있기까지 하다. 닉 캐러웨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는 여자. 식당 종업원을 하다 와인에 빠진 건 다행이었다. 조그마한 양조장에서 꽤 중요한 일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한국에서 와인바를 차린다. 그곳이 바로 제이 강의 본사가 있는 성수동이었다.
<위대한 그의 빛>에서 개츠비는 전혀 위대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건 연지다. 제이 강은 사랑과 성공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에 늘 성공을 쫓아 도망가지만 연지는 반대였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1920년대 미국의 개츠비도, 현시대 대한민국의 연지도 뭐가 위대한지 잘 모르겠다. 사랑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고, 처지가 달라지는데도 끝까지 하나의 가치를 고수하는 건 아마 두 부류만이 가능할 것이다. 아주 멍청이 거나, 자기 행동이 곧 법이 되는 사람이거나.
우리가 왜 이 복사본을 읽어야 할까? 아무리 잘나도 원작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이나 읽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위대한 그의 빛>이 저 잘난 소설에 비해 딱 100배 더 재밌다. 롱아일랜드와 웨스트에그가 성수와 압구정으로 바뀐 게 좀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손에 잡히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이 소설,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한 번 지나간 문장에도 자꾸만 눈이 간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자. 우리 중에 <위대한 개츠비>를 정독한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말고.
사다 놓고 읽지 않아 개츠비가 목에 걸린 사람이라면, 그냥 갖다 버리고 이 책을 새로 사 읽을 것을 추천한다. 웹소설처럼 술술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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