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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WiredHusky 2025. 2. 2. 09:03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줄거리를 말해야 할지 해석을 해야 할지, 후자는 능력이 없어 엄두가 안 나니 그야말로 난국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갈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씩 던져놓고 이리저리 끼워 맞춰 나가 보자.

 

우선, 이 소설은 판타지다. 주인공은 여성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유리 천장을 깨부수는 여성 신화, 인종 차별의 벽을 넘는 억센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있다. 클리셰와 혁신을 적절히 버무려 반죽을 만든 뒤 미스터리를 겹겹이 쌓아 올린 케이크이다. 신과 마법은 생크림. 로맨스는 가니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묘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야기의 근간은 힌두교의 삼주신이다. 우주를 창조한 브라만과 생명을 주관하는 비슈누, 죽음을 다스리는 시바. 힌두교의 셀 수 없이 많은 신들 중에서도 이 셋은 우주의 영원무궁을 위해 필수 역할을 맡는다. 셋의 임무는 서로를 견제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우위에 서는 법은 없다. 그랬다간 세상은 균형을 잃고 무너진다.

 

 

 

십만왕국은 이 균형이 무너진 세계다. 이템파스와 에네파와 나하도스. 가장 먼저 태어난 건 나하도스였다. 그는 공허와 어둠의 군주이자 모든 야성의 아버지다.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잘생겨서 보는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하도스의 취미는 자신에게 마음을 뺏긴 필멸자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다.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남자!

 

수 천년의 암흑을 깨고 태어난 건 빛의 군주이자 질서의 화신인 이템파스였다. 그는 형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나하도스에게 변화는 필연이었으나 이템파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둘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여동생 에네파가 태어나기 전까지.

 

에네파는 두 오빠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에네파는 공허로 가득한 우주에 창조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다. 첫 수확은 세 명의 자식이었다. 그들 역시 모두 신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필멸자를 낳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인간들. 이템파스는 그것이 싫었고 나하도스는 좋았다. 에네파는 나하도스를 더 좋아했지만 대단한 건 아니었다. 셋은 서로를 사랑했고, 그 사랑의 크기만큼 서로를 증오했다. 균형을 깬 건 이템파스의 질투였다.

 

이템파스의 질투는 신들의 전쟁을 낳았다. 나하도스와 에네파 그녀의 세 자식이 한 편을 이뤘고 이템파스와 다른 모든 신들이 또 한 편을 이뤘다. 필멸자들도 둘로 나뉘어 전쟁에 참여했다. 승부는 배신자들이 갈랐다. 에네파는 땅으로 떨어졌고 나하도스와 세 명의 자식은 이템파스의 노예가 되었다. 이템파스의 편에 섰던 아라메리 가문은 보답으로 십만왕국의 지배자가 되어 하늘궁에 거주한다. 그들은 광명의 주, 모든 피조물들의 아버지가 된 이템파스의 축복 속에서 패배한 신들을 지배하는 힘과 왕국의 유산을 대대손손 물려준다.

 

레이디 예이네. 야만의 왕국 다르에서 태어난 여전사. 그녀의 어머니는 아라메리 가문의 일 순위 후계자였으나 한 남자와의 사랑에 빠져 그 모든 축복을 거부한 채 야만의 왕국으로 도망친다. 그리고는, 암살을 당한다. 딸을 너무 사랑했던 십만왕국의 군주는 그녀의 딸, 즉 자신의 손녀를 계승 후보자로 지목해 외삼촌, 이모와 목숨을 건 경쟁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배후에 어떤 음모가 있는지, 예이네의 엄마는 누가 죽였는지, 그녀가 왜 하늘궁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신과 마법으로 둘러싸인 미스터리가 바로 소설 <십만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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