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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연민의 기록_카렐 차페크의 '곤충 극장'

WiredHusky 2014. 1. 5. 22:30






'체코'하면 그저 매력적인 동유럽 관광지 따위로 여겨지는 시대라 여간 반발심이 생기는 게 아냐, 그러니 좀 김빠지는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오늘 '체코'를 대표하는 한 문학가를 소개하려 한다.


뿡야!


어느날 잠에서 깨보니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었다는 '그레고리 잠자'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모른다고? 그렇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들어봤겠지. 이 소설의 주인공이 그레고리 잠자라네. 어쨌든 '부조리'에 관해서라면 그 어떤 대문호와 붙더라도 원, 투 스트레이트! 강냉이 한 됫박은 털고도 남을 부조리 소설의 대가 프란츠 카프카는 무려 체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아냐. 패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떨까?


어지간히 책을 안보는 현대사회의 전형적 무지랭이일지라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감당할 수 없는 허무의 무게에 짓눌려야 하는 이 소설은 1968년의 프라하를 살아낸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다. 모를까봐 하는 얘긴데,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야. 그럼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딩동댕~ 딩동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인(Nein. 아니다라는 독일어)! 나인(Nein)! 나인(Nein)!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도 나도 전혀 알지 못했어, 열린책 세계문학 전집이 없었더라면 어지간히 책을 좋아하는 나조차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그런 작가라네. 


카렐 차페크. 


너무 생소해서 깜짝 놀랐지?



카렐 차페크


생소한 이름과 어울리게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생소한 질병을 앓았던 이 문학가는 소설보다는 희곡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R.U.R>이라는 작품에서 지구 최초로 로봇(Robot.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작가! 내가 로봇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강직성 척추염은 쉽게 말해 척추가 굳어버리는 병이다. 평생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 작가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이 병을 카렐 차페크는 극작가이자 동화작가, 체코 유력 일간지의 편집자, 소설가, 번역가로서 맞서 싸웠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유일한 치료제였던 셈. 


죽음을 외투처럼 입고 다니는 작가들 중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수를 작품 속에 피워내는 사람이 있다. 삶의 한복판에선 삶과 죽음이 동전의 앞뒷면 만큼이나 가까운 사이라는 게 쉽게 잊혀지기에 인간은 부질없이 명예를 쫓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 그렇게 오만것들을 욕망한다. 그러나 안개가 걷히고, 자신이 죽음의 수렁에 빠졌음을 알게 됐을 때 인간은 비로소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연민은 필멸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곤충 극장


카렐 차페크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인간 세계를 풍자한다. 풍자는 사람을 깨우치기 좋은 형식인데 거기엔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유머는 사람을 마취시킨다. 근육은 이완되고 머리를 감싸고 있던 딱딱한 껍질이 흐물흐물 녹아든다. 우리가 그저 자빠지고 뒹굴고 난리법석을 떠는 등장인물을 보는 동안 풍자는 슬그머니 본색을 드러낸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었음이 드러나고 우리는 우리 앞에서 자빠지고 뒹굴고 난리 법석을 떨었던 그 녀석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곤충 극장>에는 인간을 똑닮은 곤충들이 등장한다. 쇠똥구리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쇠똥에 모든 욕망을 쏟아 붓고 맵시벌은 아무런 죄책감없이 다른 곤충들을 죽여 그 시체를(부를)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그런가하면 그 모든 소동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그저 음란과 방탕을 일삼는 나비들이 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폭력이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앞세운 개미들은 두 풀잎 사이의 통로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 그들은 마치 종의 전멸을 꿈꾸는 것 같다. 


<곤충 극장>을 하찮은 벌레들의 모자란 지능을 조롱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쇠똥구리에게서, 나비에게서, 맵시벌에게서 그리고 개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내가 지갑에 넣고 다녔던 게 사실은 쇠똥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풍자는 에둘러 말하지만 그 의미는 돌직구보다도 강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두 개의 희곡


사실 이 책엔 <곤충 극장> 이외에도 카렐 차페크의 태표작 <마크로풀로스의 비밀>과 <하얀 역병>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곤충 극장>의 소개글을 보자마자 아무런 고민없이 이 책을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다른 두 개의 작품에 더 매료된 이유는 뭐 따로 있겠어? 두 작품이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은 영생의 비밀을 깨우쳐 300년을 살아온 팜므파탈의 이야기를 통해 필멸의 존재가 가진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우리는 필멸하기에 역설적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필멸성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걸지도 모른다.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은 불멸을 욕망하는 인간을 연민하며 우리가 진짜로 추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준다.


<하얀 역병>은 나치즘의 광기를 묘사하는 작품이다. 세계는 하얀 반점이 생기는 신종 전염병으로 죽어간다. 급기야 역병은 신나게 전쟁을 준비하던 총사령관의 옥체를 범하게 되는 데, 유일한 치료법을 알고 있는 의사는 '총사령관께서 모든 전쟁 수단을 없애고 평화 협정을 맺으면 역병을 치료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총사령관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은 오로지 전쟁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는 걸까? 전쟁은 생명보다 소중한가?



P.S


카렐 차페크 작품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쉽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복잡한 상징의 의미를 파헤치려는 분투도, 대단히 심오한 메시지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필요 없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의미는 드러나 있다. 동화 작가이기도 했던 그의 경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이 작품들이 모두 '희곡'이라는 점이다.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희곡의 독해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곤충 극장>은 그 쉬운 내용에도 불구,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또 소설의 전통적 배경 묘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희곡의 직접적인 무대 설명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처음 희곡을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미리보기 후 구매할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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