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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그 모든 더블 앨범들처럼? - 박민규의 '더블' 본문

세상의 그 모든 더블 앨범들처럼? - 박민규의 '더블'

WiredHusky 2013. 12. 15. 22:25






알리는 말


LP 시절의 더블 앨범에 대한 로망으로 자신의 소설집을 기어이 더블로 출간하고야만 작가에게는 대단히 외람된 말이오나, 이것을 정녕 더블 앨범으로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정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더블은 일관된 주제와 내용에 따라 정밀히 기획된 작품이라기 보다는 그저 작가가,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준, 자신에게 사상적, 문학적 토양을 제공해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로써, 예의 그 광범위한 관심사를 끓여 만든 잡탕찌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소설은 늙지 않지만 소설가는 늙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순차적으로 천천히 따라오지 않았기에 변화를 더 크게 느꼈을테지만, 솔직히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를 숨 가쁘게 건너 바로 더블에 도착한 사람이라면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숨을 고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지구영웅전설을 썼을 때 36세였던 소설가는 더블이 나올 때 이미 43세였다. 물론 더블에 수록된 소설들을 모두 43세에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카스테라 이후에 씌여진 것들이고 보니 세 작품을 연달아 건너온 나로서는 다음과 같은 차이를 느낄 수 밖에. 우선, 


등장 인물들이 나이를 먹었다.


취업에 눈물을 흘리거나 갓 사회에 발을 들인 과도기적 어른의 모습이었던 주인공들은 더블에 이르러 비루한 직업을 가진 가장이 되거나, 이미 닳아버린 사회인, 혹은 하릴없이 죽음을 기다려야하는 소외된 노인이 되었다. 모두 해볼만큼 해본 사람들, 알만큼 아는 사람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세상은 훨씬 끈적하고, 훨씬 높고, 훨씬 답답하다. 예전같으면 답답한 현실에 주저앉을려다가도 돌연 환상으로 급커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간단히 세상을 뒤집었겠지만 더블은 파리 끈끈이에라도 붙은 것 마냥 허우적대다 체념과 안분과 죽음의 먼지를 쓴채 그대로 박제가 되버린다. 


이러한 변화는 피터지도록 부딪혀 봐야 세상은 여전히 'I Don't Care'라는 패배감의 발로 일지도 모르고 똑똑하고 냉정한 현실 인식에 기인한 걸지도 모른다. 바꿀 수 없다면 적응을 해야지. 그렇게 가는 와중에 따뜻한 위로를 할 수 있으면 좋은거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외롭게 살다 쓸쓸히 죽을 수 밖에. 


더블은 대단히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대단한 야심없이 그저 무겁게 흐른다. 이 무게가 바로 기성작가들이 말하는 성장일지도 모르고 데뷔 이후 줄곧 그를 따라다닌 주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추측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쎄, 그러니까, 뭐랄까, 그래


좀 밋밋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짜장면이 수십년간 언제 어디서나 거의 똑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중국집 주방장들의 대단히 훌륭한 장인 정신과 긴밀한 협의 때문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춘장을 묻은 곳의 기후도, 거기에 담은 물도, 각종 재료의 산지도, 그리고 산지의 환경도, 심지어 조리기구와 불 때는 방식까지 모두 달라졌을텐데 어떻게 그 맛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까? 뭐긴, 애초에 조미료를 잔뜩 친거지. 워낙에 강한 맛으로 간을 봤으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조미료 한 숟갈이면 맛이 똑같을 수 밖에. 몇십년째 그 맛이 한결같다는 어르신들의 맛집에는 사실 이런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데뷔와 동시에 완성된 작가가 아니라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헤아리는 전지전능한 소설가가 아니라면, 시간이 흐르고 작품이 거듭될 수록 변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소설가는 나이를 먹으며 고민은 깊어지고 지혜는 쌓인다. 하물며 현실에 깊게 뿌리를 둔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더이상 말해 무엇하랴. 


이 변화가 옳은 것인지 잘 된것인지는 오로지 다음 작품을 통해서만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그 다음 작품으로, 그 다음 작품은 그 다다음 작품으로, 그 다다음 작품은... 소설가가 해야할 일은 평가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가 느낀대로, 생각한대로, 살아온대로 쓰는 것이다. 여러분은, 설령 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많이들 읽어 주시라. 세계를 걱정하는 모든 소설가들을 위해 그리고, 이 세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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