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일러스트레이터
- 킥스타터
- 조명 디자인
- 조명디자인
- 가구디자인
- 해외 가구
- 인테리어 소품
- 가구 디자인
- 램프
- 인스톨레이션
- 재미있는 광고
- 애플
- 조명기구
- 인테리어 조명
- 북유럽 인테리어
- 미술·디자인
- 피규어 디자이너
- 진중권
- Product Design
- 가구
- 아트 토이
- 주방용품
- 신자유주의
- 인테리어 사진
- 피규어
- 일러스트레이션
- 프로덕트디자인리서치
- 프로덕디자인
- 글쓰기
- 조명
- Today
- Total
deadPXsociety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_마침내 만난 한국사 본문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걸 모조리 악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것이다. 사람들이 역사를 경외시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지하고 긴 호흡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역사를 외면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긋지긋한 암기 과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흥미진진한 학문이다. 역사가 긴 호흡을 갖고 있다는 건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는 의미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역사를 공부하는 건 더더욱 중요하다. 다른 나라를 침범한 야만적 제국주의자들이 기를 쓰고 그 민족의 역사를 지우려고 한 것만 봐도 자기 역사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음 한국사의 출간은 나에게 대단히 반가운 일이었다. 왜곡된 역사관이 역시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정부의 용인 아래 버젓이 교과서로 만들어지는 이 때, 뭔가 제대로 된 역사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바로 이 '민음 한국사'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연산군
물론 최초의 시도는 아니겠지만 이 책은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기술함으로써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조망한다.
역사의 보편성을 이해한다는 건 산 넘고, 물 건너 사는 그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광적인 배타성과 차이에 대한 몰이해는 대개 그들과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인류는 표면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해왔을 뿐 근본적으로는 지구에 속하는 한 종으로서 비슷한 역사의 발전을 이뤄왔다.
한편 역사의 특수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당신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남들은 다 똑같은 데 왜 너만 그러니 라고 하는 순간 보편성은 폭력이 된다. 이 보편의 폭력을 막고 차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열쇠가 바로 역사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다.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조망하는 건 객관적 역사서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다. 특수성만을 강조한다면 한 나라의 역사는 쉽게 신화화 될 것이다. 반면 보편성만을 강조한다면 역사에 필시 위계가 생기며 이 위계는 특정 국가의 역사를 깔보거나 침략의 구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기술함으로써 얻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재미다. 세종대왕님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무렵 - 비록 10년 뒤이긴 하지만 - 술탄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오늘의 이스탄불)을 함락시켰다거나 연산군이 '무오사화'를 일으켜 조정을 피바다로 만들고 있을 무렵 피렌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공방에 앉아 '최후의 만찬'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언제 들어도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15세기의 조선
이 책은 15세기, 무려 태조(이성계), 태종(이방원), 세종, 세조가 등장하는 조선의 건국 초기를 다루고 있다. 이 네 명의 임금님이 등장하는 조선의 역사는 정치적 긴박감과 안정, 문화 발전의 대폭발이 번갈아 가며 일어난 그야말로 격동의 한 세기였다. 이 시기가 얼마나 흥미로웠는지는 이미 만들어졌거나 현재 진행 중인 드라마,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절찬리 방영중인 KBS의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며 태종(이방원)의 형제의 난을 다룬 것이 역시 KBS의 '용의 눈물'이다. 한편 송중기를 스타의 반열로 만들어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그 유명한 세종대왕의 이야기이며 작년에 개봉한 '관상'은 바로 세조(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이 네 명의 임금을 연달아 읽으면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권력의 무정함을 느낄 수 있다. 태조는 다섯번째 아들 이방원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지만 그가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어쩌면 자신과 너무 닮았기에) 세자 책봉을 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왕자의 난으로 이어져 조정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 이후 태조는 함경도 함흥에 은거하며 자기 아들을 죽이기 위해 반란을 꾸미기까지 했다.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도 나눌 수 없는'것 이었던 셈이다.
한편 성왕 세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태종)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여 없앴기 때문이다. 태종은 심지어 세종의 장인까지 단칼에 날려 버릴 정도로 왕권을 흔드는 어떠한 위협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렇게 확보된 정치적 안정은 세종으로 하여금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성왕의 꽃은 코를 찌르는 피바다 위에서 개화한 것이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세조. 세종의 둘째 아들)은 이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왕권을 강화하지만 이후의 왕들은 그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 때문에 오히려 약화된 왕권을 물려받아야 했다. 왕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 신하 한명회가 그 누구보다도 강한 권력을 추구한 세조 때의 공신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로 점철된 역사의 한 장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약간 지루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이 정치만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암투와 간계가 난무하는 정치 투쟁은 밤을 새고 봐도 지루할 새가 없지만 '연분 9등제'와 <월인천강지곡>을 만나는 순간 지긋지긋한 국사 공부의 트라우마가 되살아 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객관적으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서술은 문장에서 감정을 지운다. 감정이 지워진 문장에서 감동을 받을 수는 없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역사서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 받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따분한 교과서가 된다. 최선을 다해 객관성을 유지할 수록 이 책이 점점 더 재미 없어 질 것이라는 사실은, 이 세상의 본질이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학 오디세이2_무한을 탈출하는 법 (0) | 2014.04.27 |
---|---|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1_머나먼 여정의 시작 (0) | 2014.04.20 |
카운슬러_이 책이 재미없다면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0) | 2014.03.30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_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_이제는 예술을 놓아줄 때 (0) | 2014.03.16 |
좀머 씨 이야기_비어 있기에 채울 수 있는 죽음 (0) | 2014.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