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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_문맹의 책 읽기

WiredHusky 2015. 8. 2. 08:36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문학을 해석할 틀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인지해온 바이기도 하니 공공연하게 떠돌던 구조조정 소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지금껏, 문맹이었다.


해석의 틀이 없다는 건 독자일 때보다 쓰는 사람일 때 더 치명적이다. 소설은 그냥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되니까. 이야기 속에 뭔가를 담아야 하는데 틀이 없으면 차곡차곡 일관성 있게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은 구멍 투성이. 곰곰히 들여다보면 엉터리 방터리다.


어찌해야하나? 고민이다. 앞으로는 평론을 좀 읽어볼까 싶다. 틀을 짜는 법을 배우면 이야기 짓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쉬워질지 모른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구매 결정하는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선 대상 수상자가 83년생이다. 자극이 됐다. 동시대, 비슷한 나이대의 소설가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얘기할까. 이것은 그 쪽 바닥에 발 붙일 길 없는 나같은 외인에게 대단히 궁금한 얘기다. 소설가들이 자주 모이는 카페 구석에 앉아 홀로 자몽에이드를 홀짝이며 그들이 떠드는 말을 엿듣는 기분으로.


대상 수상작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처음 몇 페이지는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페이크 다큐 풍의 이 소설은 역사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문체 또한 진지한 나레이터의 모습을 하다가도 어느새 코미디언이 되어 소설을 스탠딩 코미디로 만든다.


가장 흥분되는 건 이 소설에 소설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확실히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냥 이야기. 뜨끈뜨끈한 타이어 위 버스 좌석에 앉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들려주는. 흔들리는 전철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 방금 앞에 생긴 공석을 서로 사양하다 "얘기하기 불편해 그냥 서서 가자"하며 나누는 것. 여기에 무슨 놈의 상징이 있고 대단한 진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제목은 기가막힌다. 틀을 만들어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소설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틀이고 나발이고 깡그리 부숴버려 그 위에 앉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그야말로 건축이냐 혁명이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혁명이다.


건축을 모르고 건축이 힘들고 그래서 혁명으로 도피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정색하고 부정할 일은 아니다. 정말로 나는 건축을 모르니까. 다행히도 소설의 끝에는 한 편의 평론이 짝꿍처럼 붙어 있다. 언제나 소설 뒤에 설 수 밖에 없는 이 짝꿍이 나는 가끔 안쓰럽다. 그러나 이 짝꿍 덕분에 어떤 기회를 얻었나? 건축이냐 혁명이냐, 이 진지한 물음에 대답할 기회. 나는 정말로 혁명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모르겠다.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나? 추궁해도 어쩔 수 없다. 아직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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