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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셸_디스 이즈 클래식, 리얼 클래식

WiredHusky 2017. 8. 20. 09:52





<햄릿>의 가장 완벽한 재구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불길함이 엄습했다. 왜 하필 그렇게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작품을 선택한 걸까? 결코 쉽지 않을텐데, 잘해봐야 이런 저런 소리를 들을 게 뻔할텐데, 라는 마음에서 오는 불안이 아니라 그렇게 재미 없는 희곡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라는 생각에서 였다.


여기서 <햄릿>을 읽어본 사람 손? <맥베스>는? <리어왕>은? <오셀로>는? 솔직히 말해보자. 이 고전들이 정말 재미있었나? 근대 영어를 가장 아름답게 사용한 사람, 이야기의 원형, 갈등의 아버지, 고뇌의 창시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명에 휘둘리지 말고 그냥 그의 작품을 읽어 보자. 나는 요즘 이야기들이 전부 셰익스피어의 아류이며 그저 그가 한때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요즘 이야기들이 훨씬 재미있다. 그런 의미에서 <넛셸>을 <햄릿>의 완벽한 재해석이라 부르는 건 뭔가 억울한 면이 있다. 재해석이라 하면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해 보이지 않나. 아무리 잘해도 원작을 능가하지는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데뷔한 작가라면 셰익스피어와 비견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러워하며 연신 고개를 숙일 수도 있지만 이언 매큐언쯤 되는 작가에게 이게 칭찬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넛셸>은 <햄릿>보다 이천만 배 더 재미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성인이 아니라 뱃속에서 시작한다. 그의 To be or not to be는 유령이 출물하는 음침한 성에서가 아니라 양수가 가득찬 따뜻한 세계, 엄마의 자궁에서 발화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의 소멸을 걱정하게 된 아이. 이름도 없는 이 아이가 바로 햄릿의 환생이다.


뱃속에서 뭘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야기의 힘을 간과하는 것이다. 아이는 모든 걸 듣고 모든 걸 경험한다. 태교를 왜 하나? 아이는 엄마가 와인을 마실 때 자신도 얼큰하게 취해 더 달라고 탯줄을 당긴다. 아이를 위해서 그만 마셔야지? 젠장, 도대체 누구를 위한다는 거야? 자기만 기분 좋게 취해서 침대로 돌아가겠다는 엄마를 끈질기게 졸라댄다. 그러면 한 잔만 더 마셔볼까? 엄마가 먹는 건 아이도 먹는다. 엄마가 듣는 건 아이도 듣는다. 엄마가 감각하는 건 아이도 감각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일 음모를 속삭이는 이야기를 엿듣는다. 아이는 작은 아버지의 성기가 밤새도록 뻔질나게 엄마의 자궁을 들락날락하며 자신의 정수리를 자극하는 걸 감각한다. 이 치명적 불륜과 음모를 아이는 어떻게서든 좌절시켜야 한다. 그런데 무슨 수로? 여전히 우유부단한 햄릿, 설령 결심을 한다 하더라도 칼 한자루 손에 쥘 수 없는 이 미물이 어떻게? 햄릿의 미간에 꽂힌 고민의 주름은 뱃속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딘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일 이년 전에 읽었던 소설 <이노샌트>의 작가였다. 그때는 그냥 뭐랄까, 사람들이 숭상해 마지 않는 사랑의 힘. 그런 걸 눈 깜짝 하지도 않고 박살내는 통념 도살자이자 지독한 회의주의자인 줄만 알았는데 <넛셸>을 읽고 나니 보통 작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하다. 문장력, 구성, 위트, 유머. 내가 좋아할 만한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다.


어쩌면 <넛셸>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일필휘지로 단숨에 써내려간 소설일 수도 있다. 대작가의 소설치고는 분량도 짧고 스케일도 작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무너져가는 700만 파운드 짜리 고택을 벗어나지 않는다. 고뇌의 지박령 햄릿처럼. 그런데도 소설은 지루함을 모른다. 아이가 보여주는 사유의 깊이는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다. 엄마와 작은 아버지의 어리석은 음모는 인간의 욕망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나는 이언 매큐언이 <넛셸>을 필두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전부 다시 써줬으면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이상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트라우마에 갇혀 재미도 없고 읽히지도 않는 문장을 손에 들고 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독서에 대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걸 의무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독서는 의무로 하는 게 아니라 재미로 하는 것이다. 그 어떤 훌륭한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1000권을 선정한다 하더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퉤, 뱉어버리고 나한테 맞는 걸 찾아 떠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서는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간절히 바란다. 이언 매큐언이 고전을 모조리 박살내 <넛셸>과 같은 보석으로 다시 빚어내주기를. 그가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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