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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문장은 사람을 죽인다 - 김훈의 남한산성 본문

그의 문장은 사람을 죽인다 - 김훈의 남한산성

WiredHusky 2010. 10. 26. 09:00




인조 14년, 후금의 태종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청으로 바꿨다. 조선에 군신지국의 예를 요구했다. 대의의 나라 조선, 기개가 높았으나 말이 더 높아 창검이 아닌 혀로 싸우는 나라. 조선의 임금이 8도에 임전태세를 명해 결전을 다짐하자 후금의 태종은 몸소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향한다.




북방의 칼바람에 단련된 철병에겐 조선의 겨울이 낯을 간지르는 미풍에 불과했었나 보다. 압록강을 넘은지 12일째, 서울이 점령 당했다. 임금은 강화도로 피난하려 했으나 그 길 또한 막혀 있었다. 사대부와
약간의 관군, 도처에서 모여든 향병을 이끌고 인조는 남한산성에 둥지를 튼다. 개전 14일째,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화친을 거부했다. 임금의 성은은 높았고 야만국의 황제는 비천했다. 각도에 격서를(激書) 보내 분전을 촉구하면 지방 관리들이 관군을 끌어 모아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고 백성들은
농기구 대신 창검을 들어 임금의 성은에 보답할 것이었다.

싸움의 길은 생(生)의 길과 포개어져 있고 생의 길은 창검으로 으깨지는 병사들의 시체 위에 있었다. 사직은 백성의 피로 흥건한 그 길을 따라 영원히 계속되야
할 터였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김상헌이 거부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의란 삶 앞에서 무력한 것. 명나라는 운이 다했다. 옹색한 산성에 엉덩이를 비비고 눌러 앉으면 적들은 더욱 조이고 들어와 기어이 사직을 말려 죽일 터였다.
싸움의 길은 사(死)의 길과 다름 아니고, 사의 길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다. 사직은 그 치욕을 견디고 일어나 끝까지 삶을 이어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치욕과 맞바꾼 땅 위에선 백성들의 생명이 다시 시작될 것이고 무너진 성벽이 새롭게 세워질 것이며 마침내 임금의 성은이 예전처럼 온 나라에 흘러 넘칠 것이었다.


영의정 김류는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싸움의 형식 안에 패배의 내용을 채워 나갔다.' 병사들의 추위를 막기 위해 보급된 광주리를 빼앗아 수성에 필요없는 말을 먹였다. 주린 말들은 그 광주리를 풀어 끓인
여물을 먹고 죽었다. 죽은 말의 각을 떠 병사들을 먹였다. 목숨을 보전한 병사들이 성첩 위의 칼바람을 맞고 주린 말의 뒤를 따라갔다. 말이 병사를 물고 병사가 말을 씹고, 죽은 말의 영혼이 죽은 병사의 넋을 태우고 달렸다.

김류의 말은 높디 높은 조선의 말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김류의 말은, 살자는 건지, 죽자는 건지, 성문을 열자는 건지 아니면 닫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출처: Flickr.com, Patrick Houlihan>


김상헌과 최명길과 김류의 말은 서로를 밟고 타넘으며 말의 장벽을 세웠다. 편전 위의 보료에서 왕의 시야는 말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장벽 너머에 얼마나 많은 적이 웅크리고 있는지 격서를 받은 장군들이 군사를
이끌고 올라오는지, 삶의 길이 싸움의 길에 있는지 아니면 지키는 길에 있는지, 사는 것이 죽는것과 정녕 다른지, 실상은 그 둘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어떤 것인지 왕은 알지 못했다.

눈먼 왕과 충성스런 사대부들이 말로 쌓은 제단 위에서 종종걸음을 치는 동안
, 곡기 없는 뱃가죽은 헛구역질로 터졌고 칼날 같은 겨울 바람이 터진 뱃가죽을 찢었다. 조정이 피난 오기 전, 대장간의 풀무질이 쇠를 달구고 장돌뱅이가 닷새 장을 가득 채우고 동네 개들이 낯선 이들을 향해 짖던 마을, 끈질기게 이어져 오던 그 생명의 숨결이 나랏님이 오신 뒤로 잦아 들고 있었다.

왕은 나라의 뜻을 행하고 나라는 백성의 뜻을 받는 것인데, 백성이 없는 나라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니었다. 1637년 음력 1월 30일, 왕은 성문을 열고 황금빛 일산 아래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술 석 잔을 내렸다. 왕은 술 한 잔에 세 번씩, 아홉 번 절을 올렸다.




김훈의 글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소설가를 많이 봐왔지만 적어도 이 땅에서 최고의 인간 백정을 꼽으라면 그건 김훈이 되지 않을까. 나는 황석영의 담담함을 좋아하고 박완서의 소소함도 사랑하지만
순수하게 문장만으로 정신을 잃게 되는 경우는 김훈의 소설을 읽을 때 밖에 없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런게 소설인가, 이렇게 써야 소설가가 되는가'하는 생각에 이제 막 잎을 낸 글쟁이의 꿈이 시들고 아득히 멀어보이는 그 길의 처연함에 다리의 힘이 풀리고 만다. 

남한 산성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은 역사 소설이다. 생각해 보니 그는 역사 소설만 쓰는 것 같다. 김훈이 기자 출신이기 때문일까? 집요하게 사실을 수집하고 진위를 날카롭게 가려낸 뒤 솜씨 좋게 재단했던, 몸에 깊게 배인 옛 업의 습관은 그를 역사와 소설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을 지도 모른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만을 하고 살 때 가장 밝게 빛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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