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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_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

WiredHusky 2018. 4. 8. 10:46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 줄리언 반스는 말한다.


나는 신이 그리워질 때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상이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악인이 승승장구할 때, 죽음이 살며시 다가와 등 뒤를 두드릴 때.


죽음없이 신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신에 대한 그리움은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의 태생적 한계, 그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다. 언젠간 죽음의 차디찬 손을 잡고 레테의 강을 건너야 한다. 나를 존재하게 했던, 나를 세상과 이어줬던 모든 끈들은 죽음의 압도적 침묵 속에서 녹아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해 우리에게 생이라는 선물을 줬고, 죽음이라는 벌을 내렸다는 주장과 똑같이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해 우리에게 생이라는 저주를 내리고, 죽음이라는 구원을 선물했다는 주장을 믿는다. 전자가 가능하다면 후자가 가능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신을 믿을 순 있어도 그가 축복을 위해 생을 줬다고는 믿지 않는다. 나는 신이 선하고 자비로운 존재라고 믿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이 악하고, 유별나게 짓궂다는 사실을 믿는다. 증명할 수 없기는 두 주장 모두 마찬가지다.


죽음의 압도적 침묵 속에선 나를 존재하게 했던, 나를 세상과 이어줬던 모든 끈들이 녹아내리 듯이 나를 둘러싼 온갖 미움, 질투, 시기, 소란도 사라진다. 신은 언제나 불공평하지만 죽음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공명정대하다. 신을 많이 믿건 적게 믿건, 돈이 많든 적든, 악행을 하든 하지 않았든 우리 모두는 평등하게 죽는다. 나는 이 순간 이 세상이 지옥이고, 사후 세계는 오직 천국만이 있다는 믿음을 다지게 된다. 아니면 우리를 창조했고 우리 삶을 중재한다고 믿었던 그 신이 사실은 악마고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꿈꿔왔던 선한 신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이 불멸의 존재였다면 결코 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은 존재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지푸라기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지푸라기의 존재도 커진다 .마지막 계단 위에 올라, 더 이상 갈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머리 위에 떠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망상은 지푸라기를 점점 단단한 밧줄로, 마침내 황금빛 찬란한 구원의 사다리로 변하게 한다. 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말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


이 일말의 주저, 질척거림은 일종의 보험인 것이다. 계단 끝에서 정말로 신을 만나게 된다면 뭐라고 할텐가? 그 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질투가 심하고, 세상엔 아무런 관심도 없어보였지만 죽은 뒤엔 기어이 심판을 내리려 하고, 그 심판의 근거가 자신에 대한 믿음인 그 신이다. 나같은 사람은 곧바로 지옥불에 떨어지겠지. 하지만 냉탕과 온탕에 한발씩 담궈놨던 사람이라면, 생전엔 질척인다는 모욕을 받았을지언정 죽은 뒤에는 정상 참작의 요건을 획득하게 된다.


존경하는 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때 신이 이 이의를 기각할지 받아들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파스칼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을 믿는다면, 그리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신을 믿지 않았는데 당신 앞에 그 질투 많은 신이 나타난다면? 그러나 나는 파스칼이 신이라는 존재를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했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하지만 계산적 믿음은 거부하는 신, 자기를 믿든 믿지 않든 똑같이 인간을 미워하는 신, 신은 없고 신을 믿었던 자들을 벌주는 악마만이 존재하는 경우. 머리가 어지러운가? 너무 괴로워할 거 없다. 이제부터 조용히 앉아 천천히,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 법을 깨우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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