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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고르는 법

WiredHusky 2010. 8. 3. 14:08


아멜리 노통을 '적의 화장법' 따위의 저자로만 알고 있다면 저에게는 대단히 섭섭한 일입니다. '반전'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의 성향 탓이었을까요? 2000년대 초 대학가에는 도서관에 출입하는 사람치고 아멜리 노통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들이 추천하는 책을 들어보면 '적의 화장법'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물론 '적의 화장법'은 정말 훌륭한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아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게 만드는 매력이 있고 한 두페이지만 읽어봐도 몰입이 되어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며 종반부에 반전으로 정점까지 찍어 주니 정말 대중 소설로서는 이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별미'입니다. 맛이 너무 강해 연달아 3-4번 읽다 보면 쉽게 물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사실 독특한 소재나 반전 같은 장치는 신인 작가가 데뷔 초 이름을 날리기 위한 수단으로나 쓰는 방법입니다. 만약 반전 이야기로 성공한 사람이 재차 반전 이야기로 승부를 걸려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되어있습니다. 식스센스로 슈퍼스타가 된 M.나이트 샤말란이나 Open your eyes로 헐리우드에 스카웃된 알렉산드로 아메나바르 같은 사람들이 그 증거입니다. 

적의 화장법에 떡실신된 사람들은 분명 '살인자의 건강법'을 보고 '오후 네시'를 봤을 것이며 '로베르 인명사전'에서 갸우뚱 했다가 '앙테 크리스타'나 '머큐리'에선 그럭저럭 재미를 보고 '황산'이나 '제비 일기'에 이르러 '드디어 노통도 맛이 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더이상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정한 노통의 매력, 살인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1968년 생 싸이코 벨기에 여자의 진가를 아직 못 느껴 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통의 '소설'을 '논'픽션과 픽션으로 구분합니다. 소설은 모두 허구이며 픽션인데 이것을 '논'픽션과 픽션으로 구분한다니요?  이상한 말 같지만 노통의 백미가 바로 여기 '논'픽션에서 나오니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픽션을 들어볼까요? 앞서 언급한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 오후 네시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럼 '논'픽션은 어떤 책들일까요? 배고픔의 자서전, 사랑의 파괴,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바로 이 자전 소설들이 노통의 '논'픽션 들입니다.  

이 소설들은 전부 자기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이 책들이야 말로 노통을 참신한 표현의 대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석하는 소격의 달인, 그리고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주는 소설들입니다.  

이를테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에서 노통은 '엄마 뱃 속에 있는 아기'를 '튜브'로 아직 말을 못하는 어린 자신을 '부모님을 놀래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말을 참는 조숙한 아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잘 와닿지 않는 다고요? 그럼 이런 표현은 어떤가요? 


  지금까지도, 나는 딱 잘라 입장을 정리할 수 없다. 1970년 8월말에, 잉어가 있는 연못에서 길이 끝나는게 나았을까? 어떻게 알겠는가? 
  삶이 한 번도 지루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 건너편에 가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나한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대단히 심각한 건 아니다. 어쨌거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에돌아가는 방법일 뿐이니까. 언젠가, 더 이상 시간을 벌 방법이 없을 떄가 
올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저 건너편에 가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요? 죽음의 세계를 천국과 지옥으로 편을 갈라 끊임없이 회개하기를 충동질하는 세상과 그것을 '무', Nothing, 바니타스, 세계의 끝, 종말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태연하게 묻는 대범함. 게다가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에돌아가는 방법'이라고까지 하다니… 이로써 호환마마,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마지 않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마왕 '죽음'은 노통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어둠에서 빠져나와 삶의 대안이 됩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고 가치를 전복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노통의 주특기이며 '논'픽션 이외의 소설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진정한 필살기 입니다. 

재미를 따지는 것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이 '논'픽션들을 첫 손에 꼽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노통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소설을 쓸 수 없는 아직은 미숙한 작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만 있는 기괴한 상상들. 있는대로 설명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기 딱 좋은 뒤죽박죽 얽힌 추상적 관념들을 세련된 소설로 풀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지구상에 딱 한 번만 존재했는데 바로 보르헤스라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로 눈이 멀었음에도 평생동안 2만권의 책을 해치워 버린 괴물 중에 괴물입니다. 

노통을 보르헤스의 반열에 올려 놓기에는 아직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두 사람의 '픽션'만 두고 본다면 말이죠. 하지만 노통의 '논'픽션 소설들만 뽑아놓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저는 결코 노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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