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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WiredHusky 2021. 5. 30. 09:43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됐다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이다.

 

아우슈비츠.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주는 이름. 나치는 1942년부터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학살할 계획을 세웠고, 아우슈비츠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운영된 최대의 수용소였다. 1945년까지 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파이널 솔루션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저자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담은 수기이고 2부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1부에서 얻은 교훈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1부의 체험으로 인해 2부는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신빙성을 갖는다.

 

나는 오랫동안 이 책을 외면해왔는데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은 그 생생한 체험들이 내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우려였다. 굳이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유대인 학살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고, 나치의 극우적 사상에 동조해 비슷한 단체를 지지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꼭 읽어야 할까? 하지만 저자의 차분한 말투는 자신의 고통에 공감하고 분노해달라는 폭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깊이 탐구해볼 수 있는 객관성을 만들어낸다.

 

둘째는 이런 류의 책들이 곧잘 빠지는 상투적 교훈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너희들은 못할 게 없다는 식의 우월함 또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폭력적 행복론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대책 없는 꼰대 사상.

 

인간은 자신이 겪는 고통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그래서 저자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거듭된 취업 실패가 인생의 최악으로 각인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올 A+를 받지 못한 고통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고통에 우열을 가려 극복 가능성을 따지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모든 건 마음의 문제니 그냥 웃자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아무리 웃어봐도, 내 앞의 현실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찔러 들어오는데 무엇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냐는 말이다. 사람들은 낙천과 긍정을 종종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낙천은 그저 모든 게 잘될 거라 믿는 것이고, 긍정은 인생이 시궁창에 빠졌다는 걸 자각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리하는 태도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사람은 얼마든지 비관적일 수 있다. 생각과는 다르게 낙천론자의 현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외부의 상황이 어떻든 내가 취할 행동은 '나는 행복하다'라고 외치는 게 전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을 바라는 주문에 불과하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시련이 인생의 필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말이 곧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시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내가 주장하려는 건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 시련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다.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211)."

 

지치고 힘든 삶에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삶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냉담하게 탐구하는 이 책이 잘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로를 받아도 결국엔 지옥 같은 아침이 반복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내 삶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새로운 다짐을 한 당신에게 일말의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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