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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본문
<마지막 소년>의 압도적 힘에 이끌려 선택한 임프린트 엘릭시르의 소설 <무덤의 침묵>이다. 저자는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화산의 나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신이다. 레이캬비크는 LCK의 담원 기아가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을 앞두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졌다). 아무튼.
'남자는 아기가 바닥에 앉아 씹고 있던 것을 빼앗아 들자마자 그것이 사람 뼈라는 것을 알았다.'(p.5)
<무덤의 침묵>을 읽기로 결정한 건 바로 이 첫 문장 때문이었는데, 북유럽 특유의 그로테스크가 사방을 에워싸는 압도적 분위기를 기대했달까? 사실 끔찍한 살인 사건은 미국이 전문인 것 같지만, 북유럽을 배경으로 핏물이 번지면 더 섬뜩한 느낌이 있다. 날씨 탓일 수도, 희고 창백한 그들의 외모 때문일 수도 있다. 전부 스트레오 타입에 불과하겠지만.
<무덤의 침묵>은 첫 문장의 충격만큼 무서운 소설은 아니다. 실제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면 이렇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평범한 경찰 수사 이야기다. 주인공이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거나 상상도 못 한 엽기 살인 행각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연쇄 살인도 아니다! 살인 사건을 추적해 가는 형사 시리즈에서 익히 기대할 만한 것들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가, 왜 죽였는가, 어떻게 그를 잡을 것인가에 힘을 쏟기보다는 범죄가 주변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지그시 관조한다. 여기에 주인공 에를렌뒤르의 망가져버린 가정사가 평행으로 흐르며 상처 투성이의 인간사가 펼쳐진다. 스릴러, 서스펜스보다는 확실히 드라마에 가깝다.
기대하는 게 달랐을 땐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편이다. 중간, 마지막, 아니면 그 사이 어디선가 새로운 감동이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밝혀진 독서의 지도는 이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에를렌뒤르 시리즈를 더 읽을 것 같진 않다. 작가는 2008년 프랑스의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공감할 굴곡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행복은 관음의 대상이고 불행은 공감의 대상이다. 그런데 공감이란 상처를 나눠 갖는 일이다. 상처를 나누며 우리는 큰 띠를 이뤄 하나로 묶인다. 그 아래서 상처는 아물고 인생은 더 탄탄해진다. 하지만, 그 결과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서 상처의 기억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그 상처를 성숙하고 우아하게 치유하기보다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날리고 싶은, 유치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미 죽어버린 악마를 쫓는 건, 그래서 내게 좀 밋밋하고 아쉬운 일이었다. 나는 교수대에 걸린 악마의 머리를 보며 치유를 얻고 싶다. 인과응보는 이제 현실에서 완전히 사라진 유니콘이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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