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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본문
<저주토끼>를 선택한 건 '아작'과 '부커상'이라는 미스 매치 때문이었다. 아작에서 나온 소설이 부커상에 노미네이션 되다니, 내가 아는 아작은 그런 데가 아닌데... 물론 아작의 책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읽어온, 이 임프린트에서 출간한 책들은 대개 SF였기 때문이다. SF가 뭐 어때서?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
<저주토끼>는 SF가 아니었고 얼마 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한다면 한강 이후 한국 문학계가 내디딘 또 하나의 중요한 발자취가 될 것이다. 한국 문학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들의 심사평에 동의하든 말든. 그 의도가 어쨌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소설에 주목했는지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이런 책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서와 문화와 전통이 다른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배움을 위한 의문이다.
<저주토끼>는 10편의 소설로 엮은 단편집이다. 공포 또는 환상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로 전부 지독하게 쓸쓸하고 우울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갑자기 임신해 여기저기 핍박을 받다 사람이 아닌 핏덩이를 낳고 안도한다거나, 자신의 똥오줌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변기 뚜껑을 열고 나타나 '어머니'라고 부른다거나, 자기를 초기화하려는 주인을 살해하는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들.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해 죽은 자리를 뱅뱅도는 지박령의 사연이나 살아생전 누군가에게 저주를 건 벌을 받아 죽은 뒤 매일 밤 가족을 찾아오는 유령의 이야기 정도는 이 책에서 꽤 밝은 축에 속한다. 사는 게 힘들어 희망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절대 피하시라 말하고 싶다. 아니, 아픔의 공유를 통해 오히려 치료의 기회가 생기려나?
만약 <저주토끼>가 부커상을 최종 수상하면 기뻐할 일이지만, 그 탓에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펼쳐 들고 느낄 곤혹을 떠올리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직접 읽고 판단하시라.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좀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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