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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본문
먼저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당신은 클래식을 즐겨 듣습니까? 그럼요. 제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쇼팽도 있고, 드비쉬도 괜찮고, 가끔은 바그너를 청하기도 합니다, 라는 수준으로는 곤란하다. 하루키의 LP 편력은 이미 범인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다. 비록 재즈가 70 클래식이 20 록과 팝이 10이라지만 총량 자체가 어마어마해 20만 얘기해도 책 한 권이 나온다. 총 100곡을 소개하는데 한 곡 당 적어도 4개의 앨범을 덧붙이니까 그 양이 평생을 들어도 남을 정도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나도 여태껏 들어본 앨범 수를 세면 글쎄, 100개를 넘기가 힘들지 않을까? 아무래도 요즘엔 단곡을 중심으로 들으니까.
그러니 하루키의 클래식에 공감하려면 웬만한 경험으로는 부족하다. 행여나 멋진 책 커버와 그동안 하루키 에세이가 보여온 특유의 무용함에 반해 이 책을 고른다면 정말로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하루키 책이라면 거의 빼놓지 않고 읽어온 사람이 진심으로 하는 충고다. 몇 가지 예시를 보여주겠다.
다음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를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지휘 하에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이 녹음한 앨범에 대한 하루키의 감상평이다.
연주의 흐름은 둘 다 자연스럽고 조급한 구석이 없으며 적당한 유머가 감돌아 몇 번이고 편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앙세르메의 인덕 같은 것이 느껴지는 연주다.(p.17)
세상에, 스트라빈스키도 겨우 들어본 듯한데 1949년도에 활약한 지휘자 앙세르메의 인덕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게다가 연주에 유머? 음악이 어떻게 들려야 도대체 유머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을까?
다음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 작품번호 15를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1958년에 녹음한 앨범에 대한 평이다.
지극히 성실하고 설득력 있는 베토벤이다. 그리고 그 피아니즘은 매우 긍정적이고 첨예하다.(p.153)
이 말을 이해하려면 우선 베토벤 음악이 어떠해야 한다는 자기만의 정의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테니까. 피아니즘이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첨예하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끝없이 혁신하는 사업가가 떠오르는데, 그 어려운 베토벤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는 의미일까?
지금 보여준 예시는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단순히 하루키만 보고 들어왔다면 대화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오히려 그 난해함으로 인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신기한 책이다. 나는 한참을 읽던 중 그냥 책을 덮고 그가 소개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유머와 긍정과 첨예의 소리가 도대체 뭔지 궁금했으니까.
물론 나는 실패했다. 유머가 무엇인지 알려면 진지함 또한 알아야 한다. 긍정을 이해하려면 부정을 이해해야 하고 첨예를 느끼려면 부드러움과 여유를 느껴봐야 한다. 이는 한 연주자의 여러 곡과 여러 명의 뮤지션이 연주한 한 곡을 수 없이 교차 청음 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지휘자나 연주자에 따라 같은 곡도 완전히 다르다는 건 알게 됐다는 점이다. 정말 신기하게 달랐다. 이게 진짜 같은 곡인가,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검색했지만 워낙 구반이 많아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없는 것들이 많았다.(스포티파이로 가면 좀 나으려나?) 그래도 개중 몇 개를 찾아 여기에 올리니 직접 들어보길 바란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멜론을 이용했다. 해당 키워드를 그대로 검색한 뒤 앨범 커버로 찾으면 된다.
1. Stravinsky: The Firebird Ozawa Seiji
책에 소개된 건 파리 관현악단과 녹음한 아래 앨범이다. 하루키의 평은 이렇다.
소리가 보다 컬러풀하고 섬세해졌으며, 흐름에도 한결 강한 '스토리성'이 생겨났다.(p.132)
이는 오자와 세이지가 보스턴 교향악단과 녹음한 앨범과 비교하며 한 말인데, 내가 소개하는 보스턴 교향악단 버전이 당시에 녹음한 것을 2019년에 커버만 바꿔 다시 내놓은 것인지, 아니면 녹음 자체를 새로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2. Bartok piano concertos
하루키는 오자와 세이지 지휘에 피터 제르킨이 연주한 1965년 앨범을(아래) 최고로 쳤다.
두 사람의 연주로 이 곡을 듣다 보면 '맞아,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곡이었어' 하고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p.164)
두 번째는 앨범 커버가 맘에 들어 내가 골랐다.
3. Strauss four last songs
소개된 음악 중 유일한 가곡이다. 책에 실린 건 조지 셀 지휘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버전이다. 하루키는 슈바르츠코프의 가창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음악을 구석부터 구석까지 빈틈없이 향유하는 가창으로, '마음으로 노래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p.179)
이 외에도 키리 테 카나와, 리자 델라 카자, 아넬리제 로텐베르거, 군돌라 야노비츠를 소개하지만 키리 테 카나와의 것만 간신히 찾았다. 그것도 하루키가 픽한 앨범은 아니다. 하루키는 그녀의 가창이 슈바르츠코프에 비해 훨씬 드라마틱하며 '고요한 체관'이라기보다는 '그럼에도 강하게 맥박 치는 감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p.179) 고 했는데, 과연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하루키는 슈바르츠코프 쪽이라고 했지만,
나는 카나와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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