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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WiredHusky 2022. 6. 5. 10:53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는 제목 그대로 전통문학의 근본을 단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문도! 가고 싶은 대로 간다' 식의 줄거리에 인터넷 밈을 적절히 버무린 소설로, 작가는 이야기 안팎을 오가며 독자와 소통하는 포스트 모던한 형식을 취한다. 작은 판본에 쪽수도 170페이지가 채 안돼 출판사는 경장편이라 부르는데 스압이 좀 있는 인터넷 사연 정도로 봐줘도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를 선택할 독자들을 위해 줄거리를 12줄로 정리해보겠다.

 

1. 주인공 한채연은 '미디어 제작 실습'이라는 대학교 수업에서 불곡고등학교 3학년 1반 김덕배를 인터뷰하게 된다.

 

2. 김덕배, 그는 축구 경력이 전무했지만 월드컵 예선 최종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국가의 영웅이 된 고딩이다.

 

3. 그가 한국 대표팀에 선발된 계기는 '이따위로 할 거면 너네 불곡고등학교 3학년 1반 김덕배나 뽑아라'라는 어느 네티즌의 악플.

 

4. 우여곡절 예선은 통과했으나 당연히 본선에서 참패 참패 참참패한 한국 대표팀에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5. 시민들은 대표팀이 입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선수들과 패싸움을 벌이고 인근은 준 폭동 상태가 되어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

 

6. 국가는 가정폭력, 성폭력, 불량 식품, 학교 폭력과 함께 축구를 5대 사회악으로 지정해 프로팀 폐지를 비롯 한국 땅에서 축구 행위를 완전히 근절한다.

 

7. 김덕배는 사라졌다.

 

8. 한채연은 김덕배를 찾지 못한다.

 

9. 하지만 그녀는 김덕배를 인터뷰해야만 한다. 친구들에게 인당 50만 원씩 받고 과제를 전담했기 때문이다. 위약금은 200배.

 

10. 한채연은 스스로 김덕배로 변해 가짜 인터뷰를 제작한다.

 

11. 감동한 교수가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12. 세상이 다시 김덕배로 들썩인다.

 

줄거리는 대략 이 정도다. 나름 곳곳에 반전이 숨어있고 실제로 읽어보면 나의 요약본 보다 훨씬 어이없는 전개가 펼쳐진다.

 

 

안전가옥의 쇼트 시리즈는 작고 귀여운 소설들을 출판한다. 엉덩이 한쪽이 불룩해지는 걸 각오하면 청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다. 읽기가 빠르면 출근-퇴근 한 쌍으로 박살 낼 수도 있다. 호불호는 꽤 갈릴 거라 예상한다. 쇼트 시리즈가 원래 실험적이긴 한데, 걔 중에도 이 책은 톱클래스에 위치한다.

 

근본을 따지는 사람은 뇌절을 각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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