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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WiredHusky 2022. 6. 12. 09:46

<양을 쫓는 모험>은 1982년에 출간한 하루키의 첫 장편 소설이다.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단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편으로 분류하기엔 양적으로 모자란 면이 있다. 못다 한 얘기가 아쉬웠는지 하루키는 데뷔작의 주인공들을 이 책에 다시 불러 모은다.

 

그러나 분위기는 한결 다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뿌리 없이 떠도는 젊은 청년들의 빈 곳을 스케치하듯 훑었다면 이 소설은 미스터리와 모험을 담았다. 제목 그대로, 양을 쫓는 모험이다.

 

이 이야기에는 이후 하루키 장편에서 등장하는 테마의 씨앗들이 보인다. 여기서 모험을 확장하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되고 악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하면 <1Q84>가 된다. 초기작인 만큼 강도는 좀 떨어진다. 어쨌든 첫 모험 아닌가. 인물들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좀 쭈뼛거리고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작위적 우연을 겹겹이 포개어 놓는다. 나는 이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들을 거슬러 오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좀 더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그렇게 재미는 없었다.

 

 

하루키가 일본 사람인 걸 감안하면 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일본인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한다. 사상과 이론보다는 감각과 경험이 중요하다. 아마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신앙(신도)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경제 발전 시기에는 이런 것들이 장점이 되어 압도적인 제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찢기고 짓밟힌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 입장에서 저들의 현실 지향적인 태도가 분노의 응어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에겐 반성이 없다. 자꾸만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한국인이 참 못나고 지긋지긋해 보인다. 유력 정치인들은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TV에 나와 왜곡된 역사를 공표한다. 이런 태도가 지배적인 일본 사회에서 자꾸만 거울을 들이대는 하루키는 변태, 변종에 속한다. 난징 대학살을 다뤘다고 여겨지는 <기사단장 죽이기>는 출간 이후 테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지적 토양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른바 68혁명 세대에 속하고, 학창 시절엔 그 강력한 투쟁에 꽤 깊숙이 관여했을 듯한데, 잡담이 난무하는 그 수많은 에세이 속에서도 당시의 일만큼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마침내 결심을 맺었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희망을 잃은 우리처럼 일본의 68세대도 완전히 패배해 이후 깊은 허무에 빠져버린다. 하루키의 초기작에서 자주 등장하는 목적 없는 인간들은 이 상처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루키는 이후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그 폭력성을 고발하려 한다. <양을 쫓는 모험>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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