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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본문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기존의 전쟁사를 비판한다.
첫째는 기존의 전쟁사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으로 기술되어 왔다는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만 해도 그렇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참전으로 아시아까지 확전 되기는 했지만 사실상 일부 유럽 국가 + 미국의 전쟁을 세계대전이라 부르다니, 아시아에 사는 작고 노란 나로서는 왠지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다.
저자는 이른바 중심이라고 간주해온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전쟁사를 기술한다. 아프리카나 중국, 에스파냐 정복 이전의 라틴아메키라, 오스트레일리아 심지어 이순신의 임진왜란까지. 이슬람 전쟁사를 다룰 때도 유럽과 이슬람의 대립에 집중하던 기존의 시선을 거두고 오스만과 페르시아(지금은 다 이슬람 국가지만 페르시아는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이다)의 다툼에 주목한다.
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국가나 문명권 사이에 군사 역량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에도 비판을 가한다. 로마 대 야만인, 중국 대 오랑캐, 멋지고 점잖은 기사단과 잔인하고 미개한 이슬람의 대결은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역사 왜곡에 불과하다. 로마의 군사 기술이 더 뛰어났다면 그들은 왜 패배했을까? 왜 한족은 변방 중의 변방에 불과한 만주족에게 그 광활한 영토를 빼앗긴 걸까? 중무장한 채 거대한 군마 위에 올라탄 기사를 보면 가죽 갑옷에 낙타를 탄 이슬람 군대가 하찮고 미개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기후와 전략이 달랐기 때문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유럽의 기사단은 1차 십자군 전쟁에서 짧은 기간 동안 몇몇 도시를 점령했을 뿐 이슬람 문명의 심장부를 제대로 찔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의 역량이라기보다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의 지긋지긋한 분쟁 때문이었다.
둘째는 전쟁사가 특정 인물과 전투에 집중하는 경향이다.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한 한니발은 고대 전쟁사에서 전투의 신으로 기록된다. 특히 로마군을 완패시킨 두 번의 대회전에서 구사한 포위 전술은 포에니 전쟁을 기술하는 책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 본토의 상당수를 점령하고서도 결국 전쟁에서 패배한다. 로마는 추가 보급이 불가한 카르타고 군의 약점을 파고들었고 중앙을 내줄지언정 항구만큼은 지켜내는 전략을 구사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한니발은 결국 항구를 확보하기는 했으나 이 전쟁을 지속하느냐 마느냐로 갈등이 폭발한 본국의 정치 상황 때문에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질 것 같지 않던 전투의 신은 아프리카에서 완패했고 이후 지중해 역사에서 카르타고는 삭제된다.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건 전투와 전술뿐만이 아니라 전략, 정치, 병참, 통신 같은 다양한 요소의 결합이다. 전투와 그 전투를 이끈 영웅에 집중하다 보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러 가지 신선한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를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나 또한 전쟁과 전략보다는 전술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펴 든 것이 사실이다. 이야기를 즐기는 입장에서는 사실 거시적 관점보다는 영웅의 이야기와 뛰어난 전술이 더 재미있지 않은가? 한편 인류 문명의 전쟁사를 핵심만 꾹꾹 눌러 담아 깊이 있게 꿰뚫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39개의 장을 400쪽에 담은 책이다. 각각은 너무 짧고 많은 부분이 생략된 느낌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전쟁사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몇 층에서 떨어지든 지상의 보행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고도 남을만한 벽돌 책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짧은 책은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기 위해 전쟁의 본질을 단순화할 위험성과 전개 과정을 해명하기 위해 인과적 내러티브를 동원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p.400)
아주 정확한 지적이지만, 그래서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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