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인스톨레이션
- 프로덕디자인
- 아트 토이
- 조명디자인
- 신자유주의
- 북유럽 인테리어
- 램프
- 프로덕트디자인리서치
- 인테리어 사진
- 해외 가구
- 일러스트레이션
- 피규어
- 조명 디자인
- 글쓰기
- 가구
- 킥스타터
- 피규어 디자이너
- 가구 디자인
- 애플
- 조명
- 인테리어 소품
- 미술·디자인
- 일러스트레이터
- Product Design
- 인테리어 조명
- 주방용품
- 진중권
- 재미있는 광고
- 가구디자인
- 조명기구
- Today
- Total
deadPXsociety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본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1800년대 남부의 노예들을 북부의 자유주나 캐나다로 탈출시켰던 비밀 조직의 이름이다. 야만의 시대에도 늘 선각자는 있기 마련인데, 19세기의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흑인을 돕는 흑인 조직이 아니었다.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수많은 백인과 흑인이 도망친 노예들에게 은신처와 먹을 것을 비밀리에 제공하고 북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역할에 따라 스스로를 ‘역장’ 또는 ‘기관사’로 불렀다. 도망 노예들은 ‘승객’, 은신처는 ‘역’이었다. 비밀 조직답게 실제 철도 용어를 은어로 쓰며 10만 명이 넘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노예제와 관련이 있는 한 백인의 분노는 백인과 흑인을 가리지 않았다. 도망친 노예에게는 다시 옛 주인에게 끌려가 본보기를 위해 끔찍한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되거나(백인들은 식사를 즐기며 이 스펙터클을 구경했다), 구타를 당한 뒤 목이 걸리거나, 운이 정말 좋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망을 쳤던 바로 그 중노동으로 복귀하는 미래가 있었다. 백인들은 자기와 같은 피부색을 지녔으나 생각이 좀 달랐던 배신자들에겐 의외로 큰 자비를 베풀었다. 주먹맛을 좀 보여준 뒤, 그 자리에서 목을 매달았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어린 시절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실제 땅 밑을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대단히 실망했다고 한다. 그 허탈감이 바로 이 소설의 탄생 계기다. 화이트헤드는 실제로 땅을 파 선로를 깔고 기관차를 들여와 기차를 달리게 했다. 역장들은 진짜로 역을 지켰고 승객들은 북부로 달리는 이 기차를 따라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어둠을 찢고 달리는 기차처럼 경쾌한 소설이 아니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끔찍한 노예사냥이 그냥 옛날 일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현실에서도 끈질기게 살아있는 해충이라는 걸 알리고 싶은 듯 위기와 위기와 고난과 고난과 공포와 공포와 처참과 처참을 짓이긴 이야기 속으로 캐릭터를 몰아붙인다. 중간중간에 끼어든 평화는 곧 다가올 폭력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일 뿐이다. 이 소설은 꺼질 듯 말 듯 아주 실낱같은 희망만을 보여주는데, 풀어쓰면 ‘그래도 아직 흑인이 멸종한 것은 아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우리 민족의 역사에는 이처럼 멍청한 노예 제도가 없었음에 안심하고, 한편으로는 자부심까지 갖게 됐는데, 따져보면 이처럼 안이한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은 계속해서 파내고 끄집어 이야기하지 않으면 마치 존재한 적도 없었던 일로 느끼는 인간 인식의 한계 아닐까?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30년대 연방작가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해 노예 출신들의 실화를 수집했다. 이 책의 각 장을 장식하는 노예 수배 광고들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도서관에 쌓여있는 기록들을 참고한 것이다. 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뒤지고 꺼내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에 그 상처가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되어 빛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끄러운 과거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좀 그만할 때도 됐지 않았냐’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건 어떠한 상황과 이유를 대더라도 정당하지 않다. 뭔가를 바라기 때문에 저런다는 잔인한 인간들의 폄훼는 말할 것도 없다. 역사가 원하는 건 단 한가지 뿐이다. 그저 듣고, 기억하는 것. 어려울 것도 없지 않은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로스 해킹 (0) | 2022.10.30 |
---|---|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 (0) | 2022.10.23 |
태도가 작품이 될 때 (0) | 2022.10.09 |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0) | 2022.10.02 |
뭔가 배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0) | 2022.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