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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배워라 본문
해나 개즈비는 오지가 많기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손꼽히는 깡촌인 태즈메이니아 출신의 여성 코미디언이다. 그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레즈비언인 데다 일반적인 한국 남성의 대여섯 배에 달하는 체격을 지니고 있다. 1994년도까지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였던 호주가 이 거대한 여성에게 이상적인 나라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란보다는 나았겠지만.
해나 개즈비는 그 시절 호주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였으니 사회생활이 원만할 리 없었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는 항상 외톨이였고 졸업 후에는 무능력한 식충이였다. 서구 문화권에선 다 큰 성인이 직업 없이 부모의 집에서 동거를 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로 결심한다. 2006년에 데뷔한 그녀는 <나네트>라는 문제적 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다.
<차이에서 배워라>는 오늘날 출판업계가 지향하는 마케팅 전략에 맞게 그 내용과는 사실상 전혀 연관이 없는 제목이다. 그냥 해나 개즈비의 자서전이다. 문장에 유머가 넘치고 표현은 기발하다. 착즙기에 자기 인생을 넣어 있는 대로 불행을 짜내지도 않고 그 모든 역경을 극복했다는 영웅적 서사도 없다. 책으로 펴낸 누군가의 삶은 모든 이야기가 다 특별해 보이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인생일 뿐이다. 공감이란 결국 우리가 같은 처지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네트>가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이유는 그녀의 코미디가 이 쇼를 기점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볼품없고 쓸모없는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탠드업 코미디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 위에서 뚱뚱한 레즈비언이 관객의 지지를 받으려면 자신을 깎아내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나네트>를 시작했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었겠는가? 자기보다 밑에 있어야 하고, 그걸 소리 높여 인정해야만 자비를 베풀었던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의 분노가 시작됐다. 그녀의 쇼에 야유를 하는 관객들이 나타났다. 어떤 남자는 공연 중간에 그녀와 대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어떤 부부는 중간에 욕을 하며 나갔고 어떤 관객들은 환불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이러니는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성공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유심한 듯 무심한 듯 그녀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준 잔잔한 가족애가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을 특별한 시선으로 다시 보게 해 준다는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땐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수렁에 빠져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있으면 어느 순간 말없이 옆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공간의 숨소리가 스스로 이야기를 해준다. 마치 나와 당신의 가족들처럼.
솔직히 넷플릭스 시리즈는 끔찍하게 재미가 없었다. 나는 책을 읽기 전, 읽은 후 각각 한 번씩 도전을 했지만 모두 완주에 실패했다. 번역의 문제일 것이다. 혹시 나처럼 그 쇼에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이라면, 감안하고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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