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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본문
이 책은 코로나 시기에 나와 공간의 미래에 대해 얘기한다. 이 대단한 전염병은 우리의 시대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시대로 바꿔놓았다. 상업 중심지에 불멸의 성전처럼 서 있던 대형 쇼핑몰들은 폐허가 되었고 일 년에 일조씩 적자를 내던 쿠팡은 유통 거물 신세계를 가뿐히 즈려밟았다. 공간이 해체되면서 권력이 재분배된 것이다.
코로나가 몰고 온 재택근무 열풍은 꿈에 그리던 일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처럼 보였다. 출퇴근이 사라지면 기업은 더 이상 중심가의 노른자땅 위에 서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직주가 얼마나 근접하냐에 따라 수억 원씩 차이가 나는 아파트의 가치도 재평가가 불가피하다. 대도시에 모여있을 필요가 사라진 사람들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점점이 흩어져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사라졌는가? 많은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재택근무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도시는 전보다 더 북적거린다. 우리가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직주근접과 부동산 투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여러 가지의 생각이 부딪히고 융합하는 용광로의 역할도 한다. 시골보다 도시가 역동적이고, 흥미롭고, 더 많은 기회가 생성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도시는 젊은 남녀의 더 많은 만남을 보장한다. 대 코로나 시대에도 강남과 홍대의 클럽은 다른 나라 이야기가 펼쳐졌었다. 연애를 아무리 틴더로 시작하더라도 그 완성은 오프라인 만남에서 이뤄지는 법이다. AI는커녕 AI할아버지가 와도 강릉에 사는 상철과 목포에 사는 현숙의 연애는 오래갈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에는 우리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팬데믹이 몇 번이나 존재했었다. 그럼에도 도시는 귀신같이 부활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도시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해체가 아닌 재구성을 택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간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논의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유현준 교수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팬데믹 이후와 결을 맞추고 있는지는 솔직히 좀 의심스럽다. 코로나는 핑계일 뿐이고, 유현준의 상상극장을 팬데믹에 끼워 팔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책은 유현준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함에도 불구하고 산만함을 지울 수가 없다.
도보도시와 발코니가 있는 집, 낡은 건축법을 없애고 다양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건설사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자는 주장, 그리고 지하에 하이퍼루프나 로봇들이 운영하는 물류 시스템을 만들자는 이야기. 이런 것들은 사실 저자의 유튜브나 다른 책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다. 딱히 코로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이리저리, 여러모로 돌려봐야 끼워 맞출 수가 있다.
여의도에는 유현준 건축사무소가 맡은 재건축 단지가 있다. 건물 외벽에 그 사실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을 걸어놔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여의도라는 입지에 유현준이라는 브랜드가 추가됐으니 얼마나 좋은 아파트가 나오겠는가! 사실 나도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하나같이 똑같은 디자인, 그걸 탈피하겠다고 수두 환자처럼 들쭉날쭉 발코니를 빼놓은 아파트들. 생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답답한 건축계에 유현준의 아파트가 벼락같은 깨달음을 내려주길 바라면서, 한편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 똑똑한 교수님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정말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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