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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피플 본문
<TV피플>은 전형적인 하루키 소설이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등장인물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 '환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루키는 단단하게만 보이는 우리 세계가 실제로는 얼마나 놀라운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메타포를 이용하여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우리 지구는 초속 30km로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는데 약간의 덜컹거림은커녕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한다. 초속 30km라니. 총알의 속도가 초속 300m니까, 이보다 100배 빠른 공 위에 올라 우주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멈춰 서서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인식의 성긴 그물망을 촘촘히 당겨 당연하게 흘러나가던 것들을 잡아채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이야기로 바꿔낸다. 알쏭달쏭한 메타포를 입혀서. 그럴듯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때로는 공포스럽게. 때로는 미궁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TV피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 등장한다. 가구를 재배치한 뒤 들고 온 TV를 설치한다. TV피플은 나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TV피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본다. 바라만 볼 뿐이다. 텔레비전은 말끔한 신품이었다. 취급설명서와 보증서까지 비닐 주머니에 담겨 TV옆에 셀로판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TV피플이 벽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스위치를 눌렀다. 지글지글한 하얀 화면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TV를 점검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하나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내 위치에 앉아, 텔레비전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했다.
이윽고 일을 마친 아내가 집에 돌아온다. 나는 아내가 새 TV의 출현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 아내는 예민한 여자다. 장식장에 쌓아놓은 잡지의 순서를 기억할 정도로. 가구의 배치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그 TV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TV를 켜고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지글지글한 흰 화면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TV피플>은 여러 개의 단편을 엮어 만든 책이다. 맨 마지막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단편인 <잠>도 수록되어 있다. 나는 이 <잠>을 단행본으로도 갖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 아래 자리 잡은 불안을 절제된 문장으로 포착하는 절묘한 소설이다. 평탄하다 못해 밋밋하기까지 한 전개 뒤에 갑작스러운 균열이 나타나 빨아들일 때, 추락할 때 맞닥뜨리는 그 느낌, 안전벨트가 나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막을 수 없는, 순수한 공포가 몸속에 스며든다.
그 밖에는 뭐, 그냥 하루키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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