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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본문
저자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포스트 AI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학창 시절에는 미식축구에 빠져 '울버린 매서드'라는 전미 대학 리그 네트워크 랭킹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좋아한다. 한때는 사진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문화물리학자라고 자칭하는데, 아마도 인류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과학자인 듯하다. 지금은 KAIST 문화기술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과학과 문화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처음에는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에 깃든 과학의 원리를 밝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진정한 연결고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 이상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들을 모아놓았다. 때로는 미술이, 때로는 영화가, 그리고 음악이, 스포츠가 과학이라는 외피를 둘러쓰고 등장한다.
인문학에 빠진 과학자만큼 무서운 게 없다. 구양진경의 심법에 구음진경의 초식을 갖춘 셈이니까, 어떠한 주제로도 논박이 가능하고 무슨 일에도 자기만의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 쉽게는 르네상스인이라고도 하는데, 모나리자를 그리면서도 헬리콥터를 설계할 줄 알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빗대어 만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에 경도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인문을 과학보다 더 큰 일로 느끼는 것이다. 마치 사울이 폭풍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열렬한 사도가 된 것처럼(심지어 예수의 제자도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태도는 특히 AI기술을 대할 때 더 강해진다. KAIST에서 포스트 AI 연구소장을 역임하기까지 했으니 AI 대혁명으로 들끓는 지금보다 한참 전부터 AI를 연구해 왔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AI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기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저자 같은 전문가의 눈에는 현존하는 AI기술의 치명적인 단점들이 얼마나 많이 보이겠는가.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AI기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나도 지금의 AI 기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공포스러울 정도다. AI가 만들어내는 글과 음악,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고, 판박이처럼 서로가 똑같아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작정하고 만든' 콘텐츠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도 허술한 점이 많은 것이다. AI가 인간의 단순 노동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창의력이 고도로 요구되는 분야를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인간은 영원히 기술을 지배하며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는 '산업'의 힘을 지독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산업은 늘 부가가치에 방점을 찍어왔다. 떼 돈을 벌 수 있는, 불가능한 영역에 전력을 다해온 것이다. 그래서 AI는 가장 창의적이라고 알려진 영역, 그러니까 큰돈이 몰리는 영역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창의적인 인간이 가장 먼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로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한 걸까? 한때는 우리 인류에게도 개인이라는 개념이 존재조차 하지 않던 시절, 신이 이 세상을 전부 지배하던 천년의 암흑기가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무렵 암흑의 껍질을 깨고 이른바 '인본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이 태동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과거의 개념은 사라지고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지금 우리가 믿는 인간의 모습, 본질, 가치들이 생명이 태어나던 시절부터 존재한 개념처럼 느껴지겠지만 이는 역사적,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 태양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뿐이다.
인간은 과거를 학습해 모양을 가다듬은 뒤 미래로 던진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과거 혹은 수정된 과거다. AI는 인간이 했던 말, 인간이 썼던 글, 인간이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학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AI의 생성물들을 단순히 학습된 결과를 기계적으로 내놓은 것이라 폄하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단언컨대 인간의 시대는 끝난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건 인간의 파멸이 아니다.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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