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미술·디자인
- 글쓰기
- 조명 디자인
- 조명기구
- 진중권
- 북유럽 인테리어
- 가구디자인
- 가구 디자인
- 재미있는 광고
- 킥스타터
- 신자유주의
- 인테리어 사진
- 램프
- 피규어
- 프로덕트디자인리서치
- 조명디자인
- 조명
- 인스톨레이션
- 피규어 디자이너
- 인테리어 조명
- 일러스트레이션
- 가구
- Product Design
- 프로덕디자인
- 아트 토이
- 주방용품
- 일러스트레이터
- 인테리어 소품
- 애플
- 해외 가구
- Today
- Total
deadPXsociety
세계 감염 예고 본문
재앙이 터진 뒤에야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운이 좋을 땐 수년간, 나쁘면 죽을 때까지 조롱을 받다 반짝하고 영웅이 된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니는 저널리스트다. 내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시청한 영화가 <빅쇼트>와 <머니볼>인데, 둘 다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서적이 원작이다. <세계 감염 예고>가 어떤 내용일지는 이 얘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했다. 박쥐가 보유한 이 바이러스는 유비에게 목숨보다 중요했던 사통팔달의 형주, 오늘날의 우한에서 창궐해 세계로 뻗어나갔다. 경중은 있었지만 사실상 세계는 식물이 되었다. 물동은 멈췄고 사람은 갇혔다. 경제 위기는 수습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 바이러스 때문에 영원히 뭔가를 '다시 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람이 숨을 거뒀다.
팬데믹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마이클 루이스가 놓칠 리가 없었다. 미국은 신종 인플루엔자와 사스(이것도 코로나다)를 경험하며 질병통제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를 계기로 꽤 그럴듯한 계획도 세웠다. 그래서 코로나19는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이 계획이 잘 돌아갔다면 미국은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빅쇼트>와 <머니볼>의 주인공은 결국 영웅이 됐지만 <세계 감염 예고>의 주연들은 관객 하나 없는 무대 뒤로 쓸쓸히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사당을 무장 점거할 정도로 정신 나간 광신도를 거느린 트럼프조차 코로나19 대응 실패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어디를 봐도 이길성 싶지 않은 조 바이든한테 말이다.
나는 재난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내부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초근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늘, 두 부류의 인간이 등장한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그 결정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더라도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 나는 전자를 불안이, 후자를 용감이로 부른다.
불안이들은 보통 완벽한 계획을 추구하고 선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고 판단이 느리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초유의 사태에선 무기력하다. 용감이들은 판단이 빠르고 기민하게 행동한다. 완벽한 계획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움직이면서 대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들을 따라가면 숨이 넘어갈 것 같고,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 짜증이 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불길 밖으로 나와 숨을 돌리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판단이 어려운 이유는 최고의 판단이 최악의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질병 확산의 초기에 국경 폐쇄와 격리를 결정했다면 사람들의 분노를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팬데믹을 막은 게 그 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와 평화로운 세상을 보며 이럴 줄 알았다고, 별거 아닌 일에 과잉 대응을 했다고 조롱을 퍼붓는다. 재난 대응이란 불길이 활활 타올라 세상을 모조리 태우고 난 뒤에야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다. 정말 지독한 아이러니다. 그래서 판단은 늘 미움받을 용기를 동반한다. 그래도 코로나19는 꽤 좋은 상황이었다. 감염이 전 세계로 퍼져서 어떤 판단이 옳았는지 지구인 모두가 알 수 있었으니까. 그 기회를 놓친, 실패한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만왕국 (0) | 2025.02.02 |
---|---|
넥서스 (1) | 2025.01.27 |
이와타 씨에게 묻다 (0) | 2025.01.19 |
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0) | 2025.01.12 |
블랙홀과 시간여행 (0) | 202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