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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군신(軍神)의 노래 - 로마인 이야기 2권 '한니발 전쟁' 본문
고대의 전투를 얘기 하자면 포에니 전쟁을 빼놓을 수 없고, 포에니 전쟁을 얘기 하자면 한니발이 빠질 수 없다.
포에니란 라틴어로 '페니키아인의'라는 뜻이다. 따라서 포에니 전쟁이란 페니키아인의 전쟁 또는 페니키아인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역사가들은 대략 기원전 264년 부터 201년 까지 있었던 로마와 카르타고의 두 차례의 전쟁을 통틀어 포에니 전쟁이라 부른다. 물론 중간에 휴전 기간이 있기는 했다. 편의상 이 기간을 기준으로 전쟁을 둘로 나눠 기원전 264년 부터 241년 까지를 제 1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9년과 201년 사이를 제 2차 포에니 전쟁이라고 부르게 됐다.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바다에서 결판이 났다. 아테네 이후 최강의 해운국이 되어 있던 카르타고는 싸움이라곤 육지에서 치고 박는 것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로마의 개미떼들을 바다로 끌어 냈다. 승리는 카르타고의 것이 분명했다. 병력 상으로 봐도 카르타고의 해군은 로마의 1.5배에 달했다. 항해술은 말할 것도 없지.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배를 일렬로 세우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로마군을 보고 지중해 최강의 해군은 배를 잡고 웃었다. 웃고 즐기는 사이 두 선단은 얼굴을 마주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윽고 로마군의 뱃전에서 '까마귀'라 불리는 덫이 내려지자 두 대의 배는 그대로 하나로 엉켜 육지가 되었다. 이 육지 위로 유럽 최강의 군단, 로마의 중무장 보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버린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날 로마 해군의 엉성함을 비웃던 군사들 사이에도, 패배로 인해 시칠리아를 떠나야 했던 카르타고인들 사이에도 한니발은 없었다. 카르타고의 군신(軍神). 고독한 전술의 대가 한니발은 기원전 219년, 로마인들이 '한니발 전쟁'이라 부르는 제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한다.
제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개인과 로마 제국 전체의 승부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엔 아무런 깜냥이 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건 있다. 이 전쟁은 한니발이라는 사자를 광장에 풀어 놓은 뒤 수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 창으로 찌르는 형국이었다. 처음에 이 사자는 힘이 세고 아주 젊었다. 도저히 군대가 넘을 수는 없다고 여겨진 알프스를 그것도 코끼리를 이끌고, 겨울에 넘었다. 냉혹의 산을 넘어 이탈리아에 발을 딛자 마자 광장의 사람들은 속수 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사자는 단 한 개의 창도 자신의 살갗에 닿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로마는 참패했다.
참패한 곳은 시칠리아나 스페인같은 속주 도시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본토. 로마의 앞 마당이었던 것이다. 파죽지세로 조국을 파괴해 오는 한니발을 막아 세운 건 평민 출신의 집정관 샘프로니우스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로마는 한니발의 위력을 과소평가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극심한 패배를 당한 직후라도 절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로마다.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에게는 제 1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자심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니발은 달랐다. 한니발은 지금껏 로마가 상대해왔던 그저그런 장군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군신. 신에게 이기기 위해 인간은 그저 필승의 마음을 다지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야말로 총체적 역량, 조국의 역사 전부를 거는 심정으로 싸움에 임해야 한다.
<한니발>
트레비아에서 군신을 두 번째로 맞은 로마군은 2만명의 전사자를 냈다. 집정관은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카르타고 군의 피해는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헤아릴 가치도 없을 만큼 적었다'고 한다. 로마에 종말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니발은 전투 뿐만이 아니라 정치에도 능했다. 붙잡힌 수 만의 포로 중 유독 로마군에게만 혹독했다. 로마 연합의 일원으로 병력을 제공했던 동맹국 군사들에게는 충분한 음식과 따뜻한 모닷불이 제공됐다. 강력한 개미 군단을 거느리는 여왕도 휘하의 개미들을 잃고 나면 한낱 무력한 곤충일 뿐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한니발은 동맹국 포로들을 조건없이 풀어 줌으로써 카르타고의 적은 오로지 '로마'임을 천명했다.
로마 공략이 시작된 지 2년 째, 30세가 된 한니발은 로마 연합의 커다란 축인 에투르리아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토스카나 지방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세 번째 싸움터는 안개가 짙게 깔린 트라시메노 호수였다.
아침 안개를 틈타 기습에 돌입한 한니발의 군대는 플라미니우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에게 배수진을 치게 했다. 그곳은 곧 사지였다. 전투보다는 살육에 가까웠던 그 날의 싸움은 로마군의 전멸로 끝이 났다.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도 전사했다. 민회를 소집한 법무관이 로마 시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완패당했다'는 말 뿐이었다.
그대로 수도 로마를 공략할 수도 있었지만 한니발은 군대를 이끌고 남하한다. 한니발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선 자기편 부터 속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니발은 자기편 장교들에게까지 철저히 본인의 의중을 속였던 모양이다. 나는 이런 대목에 이르러선 도무지 상사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 없는 부하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보단, 연승으로 일기충천해 있으나 여전히 거대한 적군이 버티고 있고 심지어 본국의 원조조차 전무한 전쟁을 묵묵히 이끌어 나가는 한 남자의 지독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한니발은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치르는 동안 끝내 혼자였다. 이미 아프리카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 있던 카르타고인들은 한니발의 전쟁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원은 지지부진, 가까스로 결정된 지원군 파병 마저도 상륙할 항구를 확보하지 못해 번번히 실패했다. 한니발은 이런 싸움을 20년이나 지속했다.
씁쓸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다시 환호에 휩싸인 한니발의 군대를 만나보기 위해선 기원전 216년 8월로 돌아가야 한다.
평상시 보다 전력을 증원한 로마의 4개 군단(로마는 집정관 한 명이 2개 군단을 이끈다), 총 87,200명의 병력은 한니발의 5만 병력이 있는 칸나이로 향했다. 서로를 앞에 둔 두 군대가 포진을 마치자 이윽고 전투가 벌어졌다. 먼저 각 진의 좌, 우익을 담당하는 기병들이 뒤엉켜 혈전을 벌였다. 잠시 후 중앙에 위치하고 있던 로마의 보병들이 쏟아져 나오자 한니발 군의 선봉 갈리아 보병들이 좌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로마의 자랑 중무장 보병들이 치고 들어왔다. 보병끼리의 전투는 확연히 로마의 우세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기병은 달랐다. 한니발 전술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기병이었다. 지난 세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바로 이 기병의 활약 덕분이었다. 전술 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우세였던 한니발의 기병은 로마 기병을 물리친 뒤 로마군의 배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때 전투 초반 좌우로 도망쳤던 갈리아 보병들이 로마군의 좌우를 막아 세웠다. 로마군은 완전히 포위 당했다.
이튿날, 전사자에게서 빼앗을 물건을 추리는 데만 한니발의 5만 병력이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하니 이 날 한니발 군이 거둔 전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에 모여든 패잔병의 수는 채 1만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니발이 칸나이 전투에서 보여준 포위 전술
내리 4연승을 이끌어낸 한니발의 군대가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다만, 이후 한니발과 로마 집정관 스키피오 사이에 있었던 일화는 꼭 소개하고 싶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전쟁의 최후를 짐작할 수도 있으니 독서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서 그만 리뷰 읽기를 멈추시기 바란다.
(본문 364~366p. 일부 내용 생략)
12세 연상인 한니발에게 스키피오가 정중하게 물었다.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요."
스키피오가 다시 물었다.
"그러 두번쨰로 뛰어는 장수는 누굽니까?"
한니발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스키피오는 다시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세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카르타고의 명장은 이 질문에도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건 물론 나 자신이오."
자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업적으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까지 받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 말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장군께서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
한니발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순위는 피로스를 앞지르고 알렉산드로스도 앞질러 첫번째가 되었을 거요."
이 일화에 등장하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한니발이 대승을 거둔 네 번의 전투 중 세 번의 전투에 참여했고 세 번 모두 가까스로 살아 남은 로마의 귀족이었다.
이런걸 보면 역사란 정교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따분한 기계같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세번의 전투 중에 스키피오가 전사했다면, 그리하여 이후 자마 전투에 참전한 집정관이 스키피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흔히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정이야 말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것 또한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수 많은 우연이 모여 굴러가기에, 가정은 결코 의미없는 일이 아니다. 애초부터 그렇게 되리라고 결정되어 있는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그저 거대한 우연 덩어리. 후세의 우리들이 생각하는 수 많은 가정들은 실제로 몇 개의 변수만 작동했더라면 충분히 현실이 되고도 남았을 것들이다. 그러니 이렇게 우연의 체스판 위로 끊임없이 말들을 움직이며 가정해 보는 것, 이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진정한 재미가 아닐까?
로마인 이야기 1권 이후로, 사실 나는 더 이상 로마인 이야기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우선 재미가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전매 특허인 르네상스 시대의 지중해와는 다르게 로마인 이야기에는 좀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딱딱함과 건조함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뇌까지 누렇게 변색시켜 버릴 것 같은 지중해의 햇빛이 내리쬐는 것 같아 심히 권태로웠다. 하지만 2권의 제목은 무려 '한니발 전쟁'이다. 역사에 재미를 갖는 사람치고 어찌 전쟁 이야기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아직 로마인 이야기 전권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권 '한니발 전쟁'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평하건데, 이 시리즈는 이 한권의 책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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