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_나도 그걸 알고 싶다 본문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_나도 그걸 알고 싶다

WiredHusky 2014. 5. 25. 19:42






이 책은 인류가 종말할 때까지 결코 풀리지 않을 정치계의 미스테리를 다루고 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예컨대 우리 나라 노인들은 기초 노령 연금을 더 많이, 그것도 합리적 재원 마련으로 지급하겠다는 문재인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것도 더 적게 주겠다는 박근혜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과거에는 지극히 서민적인 임금 근로자들이 각종 규제를 철폐해 대기업을 살리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이명박에게 서슴없이 표를 던지기도 했다. 정치적 판단은 고작 나 하나 잘 살겠다고 내리는 게 아니라는 고귀한 신념 때문이었을까? 


어림도 없어!


더욱 불행한 건 이 같은 현실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인류가 우매한 정치적 판단에 신음하고 있다는 말. 그러나 다행인 건 이 같은 현실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인류가 힘을 모아 그 이유를 파헤치고 함께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미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종교, 민중의 아편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종교가 사람을 타락시키는 마약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것은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는 진짜 마약이 됐다.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독교 국가다. 신실한 사람들이 넘쳐나. 천사의 존재를 믿는 성인의 비율이 전세계에서 1위이기도 하다. 이 신실한 사람들이 선거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 낙태에 찬성하는 후보라면 그가 아무리 훌륭한 공약을 제시하든 묵사발로 만들어 버린다. 고우 투 헬 베이비 킬러!


진보 정당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낙태에 대해 보통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문제는 이 사악한 베이비 킬러들이 약자를 위한 경제 정책까지 내놓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난한 동시에 신실한 우리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따위 경제 정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말씀에 반하는 베이비 킬러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른다. 


이 믿음의 사람들이 베이비 킬러를 다시는 정치계로 돌아올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묵사발 내고 있을 때 그들이 뽑아준 보수 의원들은 이 고마운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노조와 직장과 연금과 의료보험을 뺏은 뒤 그들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묵사발 내버린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상관없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암묵적 동의다.



진보, 그 잘난 척하는 개새끼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잘난척을 싫어한다. 잘난척에는 모종의 우월감과 함께 듣는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격과 성향, 인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자신을 깔보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바로 감정을 가진 동물의 본성이니까. 그래서 대중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정부를 비판하며 전통적 가치를 비웃는 진보주의자들에 태도에 신물이 난다. 그 발언의 좋은 취지와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꼴보기 싫은 놈들은 뭘해도 꼴보기 싫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진보주의자들이 이전 세대의 업적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특별히 보수가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열심히 직장을 다녔고 시키는 일에 충실했으며 성실히 법을 지켰다. 주말엔 어김없이 교회에 나갔으며 언제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나라가 필요로 할 땐 자원해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렇게 흘린 땀과 피로 비로소 살만한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모든 행동이 노예근성의 발로이며 믿음에 근거한 낙태 반대를 종교적 광신으로 치부한다면 그 누가 '네'하며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자기들이 이룩해온 역사에 대한 존중이지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이 아닌 것이다. 마치 박정희 정권 하에서 조용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경제적 이득과는 정반대에 선 그 후손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너희가 정말 약자를 위한 당이냐?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자. 진보 정당은 과연 약자를 위한 정당인가? 미국 민주당의 경우 이미 노동조합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지 오래다. 그들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 대신 부유한 화이트칼라를 영입하고 기업을 회유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왜냐고? 그들이 더 많은 정치 자금을 대주니까! 그러니 진보 정당이 자유무역협정(FTA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다), 민영화, 규제 철폐 등에 열을 올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들이 이렇게 대놓고 이중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해도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 딱히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한 정책은 보수당보다 조금만 나으면 된다. 이 같은 안이함이 많은 수의 진보 정당 지지자들을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만든다.


누구를 뽑아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좌절은 극단적인 정치 혐오와 무관심으로 이어질 때(대한민국의 경우)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아무도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선 진짜 약자를 위한 당이 나와도, 각성한 정치인들이 마음을 고쳐 먹어도, 말짱 헛수고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이 책은 어떠한 해결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은 미국 사회가 보수화된 계기를 심도 있게 파헤치기 보다는 사람들의 바보같은 선택을 조롱하고 비아냥 대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나같은(이미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독자로 만들기엔 충분하지만 정작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엔 역부족이다. 그 누가 300페이지에 걸쳐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책을 사보겠는가?


과거에 나는 이 모든 난장판의 원인을 대중의 무지 탓으로 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자 이 멍청이들 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제정신이라는 자만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적들의 얼굴 속에서 오히려 그 해답을 본다. 우리는 적들과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 영화 <대부>에서 대부 말론 브란도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 알파치노에게 생의 가르침을 준다.


친구는 가깝게, 적은 더 가깝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