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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1_중세의 꽃이 '기사'라면 역사의 꽃은 '전쟁'이다

WiredHusky 2014. 6. 1. 17:52






중세의 꽃이 기사라면, 역시 역사의 꽃은 '전쟁'이 아닐까? 하물며 시대는 중세다. 번쩍이는 갑옷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중무장한 기사가 우람한 유럽산 준마를 타고 행진하는 것이다. 뒤따르는 수만의 보병들은 하늘마저 가릴 기세로 흙먼지를 피어올린다. 이른바 크루세이더, 성기사의 출진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중세는 아직 중앙 집권 체제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왕이 존재하긴 했으나 그 권력이 절대적인 건 아니었고 이에 각 지역의 영주들이 서로 수많은 기사를 거느리고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이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십자군 원정을 위해선 당연 막대한 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 군웅할거의 시대에 도대체 누가 자신의 병력을 차출해 해외 원정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앞 뒤가 꽉 막힌 상황에선 도리어 허를 찌르는 역발상이 판국을 뒤집을 수 있는 법이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도적떼로 변할 이웃이 두려운 거라면, 이웃과 나 모두를 원정 보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를 위해선 '대의'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큰 뜻. 사사로운 이익은 접어두자는 대인배의 마음. 이제 문제는 누가, 어떤 대의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때는 중세다. 말씀의 힘이 너무 강해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정도 였다는 암흑의 시대.


1095년 11월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개최한다. 대성당 앞을 가득 메운 군중 앞에서 교황은 결의에 찬 연설을 시작한다. 전반부는 예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뒤덮은 윤리의 타락에 대한 개탄이다. 이렇게 가다간 신의 노여움을 사 모두가 멸망할 것이니 이제 우리끼리의 싸움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럼 이렇게 보전한 힘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가? 이교도. 그 불신앙의 무리는 성도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중해를 장악하고 우리 코 앞까지 그 불쾌한 입김을 내뿜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에게 납치되 노예로 팔려가고 개종을 강요 받는다. 우리는 이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우리는 군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이교도를 심판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전혀 참신할 게 없는 이 연설은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일갈에 내용을 초월한 신화가 되고만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뒷 이야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1095년 11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십자군이 탄생한다. 



인간도 그것을 바란다


아무리 성스런 시대라도 인간 모두가 성스러운 건 아니다. '신이 그것을 바라셔도' 어디까지나 행동하는 건 인간. 이 인간들 모두가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십자군에 가담했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당신을 탓할 수 밖에. 


불신앙의 무리로부터 성도를 해방하고 그리스도교 형제를 구원한다. 대다수의 영주들은 이런 믿음을 갖고 팔레스티나로 향했다. 그러나 일부는 그곳에서 한 몫 벌고자 하는 현실적 목적을 갖고 있었다. 유럽 본토에 영지를 갖지 못한 다수의 기사들이 참전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한편 다수의 범죄자들도 이 성스런 무리에 합류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 전쟁은 성전이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에 참전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했다. 지금까지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 마지막 한 번의 범죄를 통해 천국행 티겟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민중 십자군'이 결성된 것도 바로 이 1차 원정 때였다. 현실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에 죽음 이후의 천국이 그토록 절실했던 걸까? 비록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채 전멸했지만 민중 십자군의 의의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신의 말씀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시의 모든 인간이 응답했다는 것. 이로써 '성전'은 전 인류(유럽인)의 소망이 된 것이다.



신과 인간은 무엇을 얻었나


신도 바라고 인간도 바랐으니 애초에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전쟁 아니었을까?


같은 그리스도교끼리의 끝없는 영토 전쟁으로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성전은 불과 5년만에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된다. 


성도가 해방된 것이다. 


모스크는 성당으로 개조되고 예루살렘 대주교가 임명됐다. 참전한 주요 영주들은 에데사에서 안티오키아, 트리폴리 그리고 예루살렘의 군주가 되었다. 


비교적 순조로워 보인 이 전쟁은 참전한 그리스도교쪽 영주들의 우수한 능력에 힘입은 바가 컸지만, 역시 상대가 되는 이슬람 세력이 보여준 창피할 정도의 분열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파티마 왕조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아바스 왕조로 분열되어 있었고 같은 왕조 내에서도 형제간, 민족간 영토 다툼이 심해 코 앞에서 이교도의 침략이 벌어지고 있어도 그것이 라이벌의 영토라면 오히려 고마워할 정도였다. 이들은 아직 '성전'을 기치고 내건 십자군의 진의를 몰랐던 것이다. 상대가 종교를 앞세워 단합했다면 이쪽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도 알라 앞에서 하나인 이슬람교도 아닌가. 그러나 이런 희망은 거의 100년이 지나기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이슬람 세계의 최고 영웅 


'살라딘'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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