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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의 철학_과학 철학 혹은 메타 과학 본문
철학과 과학의 골수팬이라면 과학 철학을 변태 잡종 쯤으로 경시할지도 모른다.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라는 거겠지. 그러나 과학과 철학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과학 철학은 강된장을 만난 보리밥이 될 수 있다.
과학 철학은 메타 학문이다. 거창하게 메타라고 써봤지만 사실 나도 메타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이 그릇에 담긴 물을 탐구하는 분야라면 메타 과학은 바로 그릇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그릇을 연구해서 뭐할 건데요?
물만 쳐다보는 사람에겐 호수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지 않는 법. 그릇을 더듬어 더듬어 더듬어 가다보면 물 속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물 전체의 모양'을 알 수 있다. 그릇을 연구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메타적 사고는 매우 생경하다. 우리는 초등 6년, 중학 3년, 고교 3년 총 12년 동안 받은 정규 교육에 불필요할 정도의 증오심을 갖고 있는 데, 이는 12년 동안 배운 지식들이 살아가는 데 혹은 직장을 얻는 데 혹은 일 잘하는 회사원이 되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비메타적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물론 한국 교육이 메타 교육을 지향한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운다는 건 '수학적 사고'를 기르기 위함이지 수학 공식을 외우자는 게 아니다. 비메타적 사고 안에서 지식과 그 지식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상황은 오로지 1:1(일반적으로는 그것보다 더 낮은 비율로)로 대응할 뿐이지만 메타적 사고는 지식을 틀로써 이용하므로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극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선 이도저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당장 써먹을 방도도 없어 보이는 메타적 사고가 지나치게 폄하되는 경향이 있지만, 200년 전만 해도 과학과 철학은 하나였다. 그 위대한 뉴턴조차 자연 철학을 연구한 '철학자'아니었던가. 피타고라스는 어떤가 그는 철학자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물리학자였지만 그의 연구를 가능케 한 건 우주와 삶에 대한 그의 철학적 태도 덕분이었다. 전공을 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프로페셔널 멍청이들은 뉴턴과 피타고라스와 아인슈타인이 철학과 과학을 '복수 전공' 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처음부터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천재였다고 믿거나. 그러나 인류 지성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에게 쏟아진 찬사는 그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생각할 줄 안다'는 이유로 부여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은 메타적으로 사고할 줄 알았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를 매끈하게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 철학서다. 메타 과학이다. 이 책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온도라는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고 이 책을 말랑말랑한 과학 이야기 쯤으로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메타 과학이라도 과학은 과학. 무시무시한 공식이 등장하고 어마어마한 전문 용어가 쏟아진다. 번역도 그닥 온전치 않다.
그러나 온도계는 커녕 온도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에 '온도'를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기억하자. 그들은 오로지 뜨겁고 차갑다는 감각만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아주 짙은 안개 속에서 시작한 작은 여정이 끝내는 거대한 '앎'에 도달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터져나오는 뜨거운 경의를, 당신은 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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