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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_다시 보기, 다시 생각하기, 다시 쓰기 본문
<퀴르발 남작의 성>은 쓰는 사람이 굉장히 즐거운 소설이다. 그럼 읽는 사람은? 호불호가 갈릴 소설이지.
이 책엔 8편의 단편이 실렸다. 그 중 5편이 일종의 다시 쓰기 소설이다. 도대체 다시 쓰기가 뭔데? 여기에 관해선 보르헤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저 위대한 천재 움베르토 에코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그저 이 사람의 문학을 해석하면서 얻은 부산물일 뿐이라고 한 그 보르헤스 말이다.
보르헤스는 진부한 문학의 대가가 아니다. 사는 동안 이 만 권이 넘는 책을 읽은 이 노인은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책을 쓰는가 하면 이미 지어진 이야기를 베껴쓰기도 하고 친구가 쓴 소설의 뒷 이야기를 본인이 쓰고 실제 역사에 허구를, 완전 허구에 역사를 부여함으로써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고 그 위치를 역전시키는게 장기였다.
최제훈의 다시 쓰기도 크게 이 안에 든다. 대표작 <퀴르발 남자의 성>은 허구에 대한 허구로 진짜 세계(우리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비평, 인터뷰, 제작 뒷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사실주의적 형식 때문에 독자는 이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진 영화고 최제훈은 이를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를 지어낸 거라고 쉽게 속아든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든 유일한 진짜는 이런 영화는 없다는 것 하나 뿐이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에는 그 유명한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하지만 은퇴해 코카인에 중독된 모습으로. 셜록이 풀어야 할 사건은 더 충격적이다. 바로 아서 코난 도일 살인 사건, 즉 자신을 창조한 작가의 죽음이다. 벌써 책장을 넘기고 싶어 근질근질하겠지?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은 <퀴르발 남작의 성>과 비슷한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정 반대다. '퀴르발'이 사실(비평, 인터뷰, 뒷 이야기)로 허구(영화)를 채우고 있다면 '마녀'는 허구로(자신이 지어낸 역사) 사실(진짜 마녀의 역사)를 채운다. 이런 형식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들이 사실은 그림자에 불과하며 나아가 그 그림자에 대한 해석과 그 해석에 대한 해석으로 이뤄진 허구일 뿐이라는 회의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제훈의 소설에 이런 상징성이 있다는 건 약간 과잉 해석이다. 생각컨대 그는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는 것 같다. 그저 유희로써 글쓰기. 이 가벼움에 몸서리 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가벼움이 그의 소설을 오히려 좋게 만드는 면이 있다.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은 진짜 '다시 쓰기'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다. 소재는 <프랑켄슈타인>. 줄거리를 좀 귀뜸해주면 최제훈의 소설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약혼녀를 죽여 그 천재 과학자를 절망에 빠뜨린 범인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이 문장에 알쏭달쏭함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 '프랑켄슈타인'이 그 괴물이 이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모쪼록 책에서 확인 하시길.
어찌보면 최제훈의 소설은 파렴치하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어도 그렇지. 유명한 소설의 주인공을 유린하고 작가보다 더 작품을 잘 아는 것처럼 주제 넘게 굴고 완성된 책을 갈기 갈기 찢은 뒤 마음대로 붙여 누더기로 만들고. 그러나 <퀴르발 남작의 성>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 비난이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자. 작가는 독자 위에 군림하는가? 우리는 작가가 출제한 문제를 푸는 수험생에 불과한가? 창조는, 상상하기는 오직 작가만이 가능한가? 이 순간 나는 "종 놈 주제에 어디 함부로 입을 놀리냐"고 호통을 치는 어떤 '종 놈'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걸 떠나 상상력의 유희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 왜 우리 좋아하잖아. 반전이나 통념을 뒤집는 상상력들. 이른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어요" 같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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