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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_영화와 책의 시너지

WiredHusky 2016. 12. 11. 10:19





몇 년 전 지인이 영화 <고백>을 보라고 했을 때 시큰둥하게 넘어갔다. 일본 배우 특유의 오버 액션이 싫었고, 수작이라 불리는 같은 감독의 연출작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 너무 우울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격려와 위로도 없이, 단 한 줌 남은 희망에까지 조롱을 날리는 악취미. 나는 그 비아냥이 끔찍이도 싫었다.


그리고 <고백>을 봤다. 생각을 고쳐 먹을 수 밖에.


영화를 보고 곧장 원작을 찾아 읽었다. 영화와 원작의 장단점은 너무 명확하다. 서로 보완 관계를 이룬다. <고백>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겐 영화를 볼 것을, <고백>을 보려는 사람들에겐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시너지가 대단하다.


영화의 장점은 다소 지루한 장면들을 세련된 연출로 커버한다는 점이다. <고백>은 대사가 많다. 그 보다 더 많은 독백이 존재한다. 이걸 묵묵히 문장으로 읽어나가는 것과 연출이 가미된 장면으로 흘려보내는 것 사이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영화는 쉴 새 없이 흐르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확실히 원작을 능가한다.


디테일은 책의 힘이다. 영화는 카메라의 존재로 인해 특정 이야기나 감정에 주목을 요구할 수 있다. 영화는 지금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관객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렌즈 안에 콕콕 집어 담아낸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 안에 넣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반드시 배제를 낳게 된다. 무엇을 택할 것이냐는 질문은 곧 무엇을 배제할 것이냐는 질문과 같다. 그래서 소설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인 총체적 정경을 제시하지만 영화는 의도된, 단 하나의 장면만을 보여준다.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가 원작을 디코드 해나가는 작업을 지켜보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책은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총 6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을 하나의 단편으로 엮어도 될 만큼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흐름이 끊기는 감이 없지는 않다. 각 장이 품은 긴장의 강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지루함을 낳기도 한다. 영화는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를 하나로 묶고 앞 뒤로 성직자, 전도자를 배치했다. 앞 뒤의 순서는 원작과 같지만 중간은 서로 교차되며 엉켜 있다. 이 교차와 엉킴이 연출의 핵심이다. 탁월하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다.


<고백>은 첫 장에서 사건의 결과와 경위가 모두 고백되어지기 때문에 이후의 이야기들이 하나 씩 퍼즐을 이뤄나가며 비밀을 찾아가는 미스테리 장르가 아니다. 이 책은 복수극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유유히 숲을 걷는 범죄자를 처단하기 위해 사냥꾼이 등장한다. 지금까지는 그저 멍청이인줄만 알았던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종업식 날 살인자들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범인을 쫓는 사냥개를 푼다. 개는 맹렬히 달려 한 명의 목을 물어 뜯지만 다른 한 명에겐 도리어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흘린 피가 살인자의 몸을 흠뻑 적신다. 해는 지고 숲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갈 길은 아직 먼데, 피비린내를 잔뜩 풍기는 살인자는 과연 굶주린 괴물들을 피해 숲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은 철저한 복수극이다. 그 완벽함 때문에 오히려 구성이 흔들리는 감이 있지만 복수의 짜릿한 쾌감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악인보다, 그 악인을 심판하려는 선인의 복수가 더 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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