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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_싱글 몰트를 마셔보셨나요? 본문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_싱글 몰트를 마셔보셨나요?

WiredHusky 2017. 5. 21. 12:24






나는 최근에야 술의 맛을 알게 됐다. 싱글 몰트 위스키와 꼬냑. 지금까지는 술을 마시면 몸이 아프고 구토가 심해서 도저히 즐길 수 없었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일본 출장 당시 아사히 슈퍼 드라이 생맥주를 마신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맛이 달랐다. 술도 맛있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 몇몇 해외 맥주에 맛을 들이긴 했으나(파울라너, 코젤 다크, 아사히 병맥, 슈퍼복 병맥) 역시 한 병을 채 마시지 못했다. 콜라 잔으로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여지 없이 맛이 써졌다. 와인이나 샴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지난 달 싱글 몰트와 꼬냑을 만났다.


외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오며 사온 술이었다. 싱글 몰트는 글렌피딕. 꼬냑은 헤네시 V.S.O.P와 Camus X.O. 도저히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향과 목넘김이 죽였다. 이런 게 바로 술이구나!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의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많이 마셔도 취하질 않았다.


술도 못 마시는 게 무슨 맛을 논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맛이 없는 술은 도저히 입에 댈 수 없다. 그런 사람이 마시고 싶어하는 술이라면 그 맛이 어떻겠는가? 술고래들이야 이 술이든 저 술이든 아쉬운대로 마시고 취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같은 약골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맛과 향, 분위기에 훨씬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술 맛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올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그 맛을 아는 사람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전하는 따뜻한 마음을 꿈꾸며. 하지만 그런 날은 흔치가 안다. 행복이란 지옥에 가끔 비추는 햇볕 같은 거니까.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같은 책으로 대리 만족을 할 수 밖에.


이 책은 맥주광이자 위스키 매니아인(그는 등단 전 위스키 바를 운영한 적이 있다.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깅을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루키가 스카치 위스키의 성지 아일레이 섬과 그들에게 위스키 제조법을 전수해준 과거의 전설 아일랜드(아이슬란드가 아니다. 켄 브루언과 U2의 나라 아일랜드다)를 여행하며 기록한 에세이다. 그는 이 두 곳의 위스키 주조장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먹고 마신다. 기가 막힌 문장도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도, 한 마디로 별 내용이 없는 여행기지만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었다. 100페이지가 간식히 넘어가는 책. 한 시간 반이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싱글 몰트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일랜드 관광청이 발행하는 여행 가이드 보다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쓴 맛은 하나도 없는, 그 부드럽고 따뜻한 위스키의 촉감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질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친듯이 술이 땡긴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양주를 권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양주는 숙취가 없다고. 정말 비싼 양주를 마시면 술 맛을 알게 될 거라고. 그 말대로 양주를 먹어본 뒤 전부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본인이 마신 양주가 어떤 종류였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 발렌타인이나 조니 워커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믿고 딱 세 잔만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셔보라. 가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싱글 몰트, 이 네 글자만이 관건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오직 맥아로만 만든 순수한 위스키다. 대부분은 그 맛 없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원재료로 팔려 나가지만 일부는 독자 브랜드를 갖고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위스키라고 하면 싱글 몰트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 맛있는 싱글 몰트에 왜 다른 걸 섞어 마시는지 이해를 못한다고 한다. 내 말이 딱 그 말이다.


다행히 최근엔 싱글 몰트 위스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블렌디드는 지고 싱글 몰트가 떠오른다. 부드럽고 약한 술이 대세로 자리 잡는 게 전 세계적인 트렌드일까? 물론 싱글 몰트 위스키의 도수는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경험상 블렌디드보다 싱글 몰트가 훨씬 마시기 쉽다.


싱글 몰트를 맛있게 즐기는 법은 그냥 마시는 것이다(아일랜드 사람들은 약간의 맹물을 타서 마신다). 절대로 온 더 락은 안 된다. 취향이야 제각각이지만 위스키의 성지에 여행을 가서 온 더 락을 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야만인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싱글 몰트 위스키 입문자를 위한 좋은 포스트가 있어 추천한다. 양주가 비싸다는 편견은 갖지 않는 게 좋다. 아까도 말했듯이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다. 싱글 몰트. 오직 이것만이 중요한 요소다.


http://hending.tistory.com/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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