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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_자신의 문학을 오롯이 살아낸 소설가

WiredHusky 2017. 7. 9. 09:53






황석영 선생의 책을 기다려온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선생의 인생은 소설보다 기구하고, 파란한 만장이 들불처럼 번져 일어난 역동적 삶이었으니 이 자전은 가히 소설을 읽는 것만큼 흥미롭고 재미있을 터 였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선생이 한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마 <오래된 정원>에서 읽었을 것이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자신의 문학을 오롯이 살아냈다는 뭐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선생은 소설가이면서 행동가였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온갖 비극과 살을 비비며 살아온 분이셨다. 베트남전 참전, 광주 항쟁, 방북, 망명, 칠 년의 복역. 이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른 소설가들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경력이었다.


선생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났고 광복과 함께 평양으로 내려온다. 한국 전쟁 탓에 북에서의 짧은 유년 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후 대구, 대전 등 피난지를 전전하다 대개는 서울 영등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선생이 경험한 전쟁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어느 전쟁이 아름다울 수 있겠냐마는 같은 동네에서 멱을 감고 콩을 볶던 형, 동생이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철책을 따로 넘은 부부가 영영 만날 수 없게 되고, 피난 길에서 손을 놓친 아이들이 서럽게 울며 선로를 따라 달리는 그들이 바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모습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더더욱 아프게 한다.


만일 운명의 여신이 공평하다면, 그래서 살면서 겪는 고통과 행복은 어느 쪽에 하나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동일하게 오는 거라면, 전쟁을 경험한 그 세대는 평생의 불운을 한꺼번에 몰아 겪었을테니 앞으로의 생은 행복으로 가득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들이 맞은 현실은 군사 독재와 자유의 강탈이었다. 국민의 피로 지킨 강토는 강도와 매국노들의 차지가 됐다. 선생이 청년이 됐을 때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영속화 하려 했다. 시대는 투쟁을 원했고, 선생은 싸우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선생이 행동으로 보여준 사상과 정신의 힘은 이 땅을 이 땅의 주인이어야 마땅한 이들에게 돌려주려는 수 많은 운동의 씨앗이 되었고, 그 때의 노력으로 우리는 느릿 느릿 거북이처럼 기어가기는 하나 그래도 민주 사회라 부를 만한 나라에게 살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겨레의 역사를 수 많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고통 받은 한의 역사로 묘사한다. 그러나 나는 고대의 그 모든 슬픔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현대사 백년의 압축된 비극과 겨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내 세대와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기에 내가 공감하는 감정의 순도가 더 높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생을 비롯해 수 많은 이들이 걸어온 투쟁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내 안온한 생활에 슬금슬금 죄책감이 기어들면서 한편으로는 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지?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나는 선생의 글을 읽으며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그나마 내가 드릴 수 있는 작은 보답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1, 2권으로 나뉘어 있지만 1권만 읽고 끝나도 무리는 없다. 선생은 자신의 삶을 편년체로 엮지 않고 플래시 백이 난무하는 한 편의 영화처럼 구성해 놓았다. 1권에는 소년과 청년과 장년의 선생이 모두 등장한다. 이제는 노년이 된 선생의 삶을 보고 싶으면 2권으로 넘어가야 할테지만 목차를 보니 2권에서도 현재의 선생은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수인>은 선생의 인생 중 가장 잔인했던 시기를 끊임없이 맴돈다. 자신의 문학을 오롯이 살아낸 남자의 향기가 가장 진하게 배어든 시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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