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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_검은 얼굴의 요사리안

WiredHusky 2017. 12. 24. 12:08





<배반>에 대한 해외 평 중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한국 독자에 한해 그건 신랄한 풍자와 문체, 거침없는 욕설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루함에 대한 경고라고 봐야 한다. 왜? 우리는 결코 흑인이 당한 인종차별의 고통을 피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이 책은 흑인과 그들이 겪는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북유럽에서 블루칼라 아시아인으로 살아가거나 조선 초기 명망 높은 양반 집의 노예가 되어 애기씨를 훔쳐봤다는 이유로 두 눈이 뽑혀 쫓겨나는 일을 삼대 쯤 겪어야 한다. 솔직히 우리의 모국에서 우리는 대개 인종차별의 가해자지(중국인 여행객, 조선족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자) 피해자가 아니다.


지금부터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그건 우리가 우리의 이마에 조상님들의 신분을 가리키는 문신을 새기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 반갑습니다. IT 개발실의 김갑수 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회의실에 앉았는데 자꾸만 이마의 문신이 눈에 들어온다. 김갑수씨는 확인이 가능한 선조대부터 쭉 망나니를 해왔던 집안의 27대손이다. 까만색으로 '천'이라 적힌 글자는 그의 근본이 오랜 시간 불가촉천민의 토양 위로 뿌리 내리고 있음을 얘기해 준다. 이런 사회에서 김갑수 씨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지각, 업무상의 실수, 프로젝트의 실패 등은 다른 사람이 저질렀을 때와 똑같은 무게를 지니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김갑수씨는 취향이나 취미마저 자신의 뿌리와 연계되어 설명되는 부조리를 겪어야 한다. 천민이라 역시 생선을 좋아하네요. 천민들은 고기를 살 돈이 없어 비린내 나는 생선을 주로 먹었답니다. 저 사람들이 잡곡밥을 즐기는 이유는 쌀밥을 먹지 못했던 조상들의 입맛이 그대로 이어져온 거라고 봐야합니다. 대한민국은 다행히 봉건 시대의 신분 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근대 국가이며(대신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계급이 탄생했지만) 설령 이런 차별이 존재 할지라도 자신의 출신을 감추는 게 어느정도 가능한 사회다. 하지만 흑인은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의 얼굴이 '검기' 때문이다.


그들의 피부엔 그들의 뿌리를 증명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캐내거나 지울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부를 모두 벗겨낸 뒤 과다 출혈로 죽는 것 뿐이다.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건? 자신이 노예의 자식임을 증명하는 라이센스를 지닌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Me는 LA 근교 디킨스 시에 사는 흑인이다. 그는 농장을 경영하며 호미니라는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병원과 학교 버스 등 공공시설물에 백인과 흑인의 이용 범위를 구분하는 표지판(혹은 페인트 칠)을 붙여 디킨스 시에 철저한 인종 분리를 시도한다. 그의 노예 호미니는 흑인 아역 배우 출신으로 인종차별이 난무하는 코미디 TV 드라마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노인이다. 호미니는 드라마에서 온갖 차별을 당했던 그 시절을 오히려 자신의 전성기로 추억하며 나이를 먹고 나서도 학대를 당하는 걸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긴다. Me는 호미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의 생일날 백인 지정 좌석이 있는 버스를 선물해준다.


흑인 작가가 흑인을 주인공으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건(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배반이다) 어떤 상징이나 대의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이 부조리극을 통해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고, 인종차별이 천박과 무지의 뿌리로 대변되고, 더 이상 어떤 회사도, 학교도, 병원도 인종 분리를 하지 않는 세상이 왔지만 여전히 흑인은 도시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 살고 마약 거래와 총기 없이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가난과 범죄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현실을 조롱하려 한다. 폴 비티는 Me를 통해 묻는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는가? 얼굴이 검다는 의미는 더 이상 물건을 훔치거나, 세금 또는 카드 대금을 내지 않거나, 빈 집을 털거나, 백인 여자를 강간하거나, 주유소에서 강도질을 하는 것과 동일시되지 않는가?


이 책이 신랄한 풍자와 조롱 블랙코미디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결코 재밌거나 공감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반>은 흑인 역사에 대한 수 많은 레퍼런스를 제공하고 친절한 출판사는 그 모든 내용을 각주로 촘촘히 설명하지만 설명은 설명이고 글은 글일 뿐이다. 8,000RPM으로 눈알을 아래 위로 굴리며 그 모든 단어와 문장을 섭렵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이야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한번도 이런 차별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당신이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 말은 취소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만연체 문장, 그러니까 흑인이 부딪혀온 수많은 역사적 난관을 딱 잘라 말할 수 없기에 구불구불 단어에 단어를, 문장에 문장을 붙여 표현하는 저자의 독특한 스타일을 난잡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 책이 맨부커 상을 받았대도 소용없다.


내가 <배반>을 위해 해줄 수 있는 홍보는 딱 하나다.


이 책이 조지프 헬러의 <캐치-22>를 정돈된 소설로 보이게 할만큼 대단한 난동극을 보여준다는 것. 


검은 얼굴을 한 요사리안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사라. 내가 거기에 넘어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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