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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능력을 교환해드립니다

WiredHusky 2021. 2. 13. 10:22

<당신의 능력을 교환해드립니다>는 7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환상 소설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이 신선? 요괴? 아무튼 무언가에게 사로잡혀 '바쿠리야'라는 가게를 떠날 수 없는 한 남자가 찾아오는 손님들의 능력을 교환해 준다. 이런 것도 능력이야? 라고 생각되는 것도 상관없다. 모든 여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남자, 살던 곳을 떠나려고 하면 늘 폭우가 내리는 기인, 다니는 모든 회사를 파산시키는 저주왕 등등. 성격만 맞는다면 능력은 얼마든지 교환 가능하다. 단, 조건이 있다. 바뀌는 능력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 사태를 후회하지 않을 사람들만 '바쿠리야'에서의 교환이 가능하다.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바쿠리야'가 이야기의 중심인 것은 맞지만 7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갖는다. 패턴이 좀 지루할 만도 한데 나름 요리조리 비틀어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바쿠리야' 앞에 데려다 놓는다. 각오가 되면 가게 구석에 앉아 쉬던 고양이가 손님의 손등을 할퀴고 주인은 그 피를 수집해 병에 담는다. 능력이 바로 교환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성격이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이 성격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예컨대 제구가 되지 않는 강속구를 던지는 능력이 무언가를 잘 빠는 능력과 교환되는 식이다. 뭘 기대했는가?

 

 

교환될 능력이 결정되면 각각의 주인들에게 '바쿠리야'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그날 자정 능력이 교환된다. 번개가 치고 돌풍이 부는 건 아니고 그냥 스르륵 무언가가 빠졌다가 들어간다. 자기가 어떤 능력을 갖게 됐는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대개는 해피엔딩인데, 때로는 그렇게만은 부를 수 없는 결말이 기다린다. 인생지사 역시 새옹지마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소설은 쉽고 간결하다. 치밀한 심리 묘사나 가슴을 탁 치는 문구 같은 건 없다. 문장은 오로지 전개를 위해서만 헌신한다. 이야기는 파바박, 책장은 훌훌 날아다닌다. 솔직히 일본 장르 문학의 전형적 특징을 답습한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읽는 책이다.

 

나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외국의 크고, 다양한 출판 시장이 부러워진다. 우리는 책과 독서라는 행위에 너무 커다란 짐을 지우는 경향이 있다. 생각 없이 TV를 키는 것처럼 책을 펼 수는 없는 걸까? 심심풀이 땅콩 역할을 하는 책이 과연 저 위대한 문학들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 따지고 보면 문학이라는 것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게 얼마 안 됐는데 말이다.

 

<당신의 능력을 교환해드립니다>를 읽는다고 해서 대단한 소양이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킬링타임. 요즘 같은 시국에 시간을 잘 때울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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