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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자본주의가 당신의 퇴근을 막는다 -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본문

주주자본주의가 당신의 퇴근을 막는다 -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WiredHusky 2011. 1. 20. 07:30




장하준은 워낙 글을 쉽게 쓰는 사람이라 인터뷰 같은 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책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쌍방향 소통. 묻고 답하기. 때때로 말대꾸와 반박. 이런건 일반 저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저자와 직접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도 있지만 좋은 답변에는 언제나 좋은 질문이 선행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말대꾸와 질문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지승호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전문 인터뷰어라고 한다. 여기다가 장하준의 후배 윤미선 박사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빈재익 박사가 더해졌다. 네 사람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담소하듯,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깐다. 뒷담화만큼 재밌는 일은 참 드물다.




신자유주의의 나쁜 점이라면 수 백만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특히 우리 나라 재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건 '자본 시장의 전면 개방'이다. 그럼 자본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외국의 거대 자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우리 자본 시장에 드나들 수 있게 된다.

얼핏보면 자본의 유동성이란 당연한거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 시장의 개방은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나라같은 빈국이(貧國) 자본 시장을 개방하게 되면
곧바로 막대한 규모의 다국적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된다. 쉽게 말해 SK와 삼성전자의 주인이 외국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국내 재벌 꼴보기 싫으니까 외국 자본이 혼내주면 쌤통 아니냐고? 하지만 천만에, 이런 사람들이 주인이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 된다.

우선 투기자본의 유일한 목적은 첫째도 돈, 둘째도 돈, 셋째도 돈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인재 육성이나 장기 투자 같은건 절대 악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팔든 당장의 이익만 뽑아내면 그만인데 뭐하러 골치 아픈 미래 비전을 구상하겠는가?

게다가 이 사람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익과 사회 기여에 대한 의무가 전혀 없다. 그래서 기업을 인수 한 뒤 임금 동결, 대규모 구조 조정, 미래 사업 정리 등으로 단기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익금은 바로 배당금으로 직행한다. 거기다 플러스 알파로, '사상 최대 이익'이라는 달콤한 함정에 빠진 주가가 상한가를 칠 때 막대한 시세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버린다. 흔히 말하는 먹튀가 바로 이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오히려 투기 자본이 일정 비율의 지분을 차지한 뒤 재벌들의 경영권을 압박할 때 발생한다. 이런 일은 IMF 시절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일련의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런 제도들은 국내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의 대다수가 외국 자본에 의해 잠식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당시 도입된 제도를 살펴보면, 소수(소액)주주의 권한 강화, M&A 규정 완하 등이다. 투기 자본은 이러한 제도를 이용해 공략 기업의 주식을 일정 지분 확보, 강화된 소수(소액)주주의 권한을 이용해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이사를 선임하거나 CEO의 퇴진을 요구) 막대한 배당을 요구 또는 M&A 의사를 밝히는 등 본격적으로 회사의 경영권을 압박하게 된다.

이때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게 되면 그만큼 투기 자본의 공략이 더 쉬워지기 때문에 경영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막대한 배당금을 지급해 주가를 방어한다.





그럼 배당금이나 자사주 매입금은 재벌의 주머니에서 나오느냐? 아니다. 그 돈은 전부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영업 이익이다. 영업이익이란 기업이 순수하게 생산 활동을 통해 얻은 잉여금으로 미래 사업에 투자하거나 직원들 복리후생 챙겨주고 오갈데 없는 졸업자들 일자리를 마련해줄때 가장 빛나는 돈이다. 이런 돈이 엄한데 가서 힘을 빼고 있으니 그 폐해를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더 처참한건 이 뒤 부터다. 기업이 투자를 못했으니 장기적으로 영업 이익이 줄어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업 이익이 줄다 보니 주식 시장에 불안감 조성되고 배당이 줄어드니까 주주들이 난리가 난다. 생산성, 기술 발전 속도는 일정하니 갑자기 이익이 늘어날 수는 없는거고 그러다 보니 남은 방법은 임금 깍고 하청업체 쥐어짜서 영업 이익 만드는 거다.

외국놈들이 이런다면야 언론이고 여론이고 다 들고 일어나 난리를 치겠지만 대한민국 재벌들이 이런짓을 하면 어디가서 하소연 할데도 없다. 언론과 재벌은 일치단결. 임금 좀 올려보겠다고 파업하면 조중동 3사에서 '고액 연봉자 염치 없는 파업 러쉬',
'파업에 멍드는 우리 기업, 외국 자본의 먹잇감 된다' 한 마디씩 해주면 사람들은 다 그런가 보다 하며 애꿎은 놈한테 손가락질이다. 자기 자식이 배를 곯아도 정신 못차릴 사람들이다.




장하준은 언제나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치우침없는 중용을 주장하며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간결함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못해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세가지 특성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결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아님에도 나는 그를 읽을 때 마다 언제나 이 말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1963년생 아직 마흔 일곱. 그야말로 귀추가 주목되는 요주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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