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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항법에 맡긴 10년 - 커트 보네거트의 '타임퀘이크' 본문

자동 항법에 맡긴 10년 - 커트 보네거트의 '타임퀘이크'

WiredHusky 2011. 2. 1. 07:30




흔히 '뇌'라고 불리는 3.5파운드의 피묻은 해면체에 재치 넘치고 웃음끼 가득한 소설의 생산 공장을 차려놓은 커트 보네거트는 바로 이 소설 '타임 퀘이크'를 마지막으로 그의 기나긴 필모그래피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 자신 혹은 그의 팬들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이 모든 상황과 감정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한 마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는거지.(So it goes)




들어보라. 커트 보네거트 Jr, 흔히 커트 보네거트라 불리는 이 사내는 1922년 11월 11일, 지구가 얼마나 잔인해질지 예상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두 남녀의 종족보존욕구에 따라 10개월의 생산 과정을 거친 뒤 이 세상에 태어났다. 더 들어보라. 그는 대학 생활 중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정찰병으로 적의 척후를 살피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고 드레스덴 폭격의 신나는 불놀이를 체험했다.

그 참혹한 현장을 뚫고 '운 나쁘게 살아남은'
커트 보네거트는 언젠가 이 경험을 소설로 옮길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1969년 제5도살장이 나오기까지 무려 24년간 그는 완전히 무명 소설가로 살아가게 된다.

타임퀘이크는 47년간 무명으로 살아온 소설가가 75세가 되었을 때 생산한 책이다. 보네거트의 이름을 단 소설은 여기서 대가 끊긴다. 작가 스스로도 그것을 예감했는지 소설은 이 위대한 작가가 살아온 일평생을 한 바구니에 담아 놓은 것처럼 푸짐하고 밀도 높으며 또 총체적이다.




들어보라. 이 세상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우주적 경련에 의해 시공간이 10년의 시간만큼 수축한 뒤 다시 팽창하기 시작했다. 예외없이, 전 지구의 모든 인간들에게 다시 주어진 이 10년의 시간은 그러나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된 사람들의 과거를 바꾼다거나 하는 긍정적 의미의 사태가 결코 아니었다. 보네거트에 따르면 타임퀘이크, 삼류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에 의하면 '자동항법에 맡긴 10년'에 해당하는 이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없었다.

예를들어 1996년 3월 21일에 사소한 말 다툼으로 아내를 쏴 죽인 남자가 있다면 그는 다시 한번 돌아온 1996년 3월 21일에 어김없이 아내를 쏴 죽이고 감옥에 갇혀 종신형을 수행해내야 했다. 버튼 하나로 수 만명을 살해했던 남자는 다시금 버튼을 눌러 수 만명을 살해해야 했다. 끊어진 다리를 눈치채지 못하고 절벽 밑으로 떨어진 고속 열차는 끊어진 다리 끝에서 다시 한번 다이빙 해야 했으며 가난과 싸우다 지쳐 강물 위로 몸을 날린 여자는 어김없이 다가온 그 시간에 차가운 강물과 재회해야 했다.  

그러니까 다시 주어진 10년은 기회가 아니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되는 기계적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종의 데쟈뷰를 느끼며 이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이 자기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실제로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존 레논을 죽이라'는 악마의 음성을 듣고 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행위와 타임퀘이크 이후에 회사에 출근하고 맥주와 야구를 즐기고 잔디를 깍으며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행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둘 모두 꼭두각시 노릇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타임퀘이크가 일어난 지 정확히 10년 뒤,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오랜기간 사고가 마비되었던 탓에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그래서 길을 걷던 사람들은 다음 순간 어느 발을 내딛어야 할지 몰라 넘어졌고 달리던 자동차들은 갈 곳을 잃고 보도와 건물로 뛰어들었으며 비행기는 추락했다.

이 와중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평소의 삶을 유지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노숙자들이었다. 그들의 삶에는 애초에 아무런 목적도 없었기에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지 앞에서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단지 누워있었을 뿐이며 앞으로의 10년도 계속해서 누워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무용함이야 말로 타임퀘이크 이후에 가장 유용한 덕목이 될 수 있었을줄은 누가 알았으랴?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노숙자들 중엔 삼류 SF 소설가 킬고어
트라우트도 속해 있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자유의지가 돌아왔음을 알아챘다. 그는 잠들어 있던 노숙자를 깨우고 멍하니 서 있던 사람들을 흔들며 이렇게 외쳤다.

'자유의지야!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돌아왔다고!'

이렇게 해서 지구의 인간들은 다시금 자유의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세상은 난장판이 됐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할 일은 무척 많았다.




타임퀘이크는 '되돌린 시간'이라는 SF 소재를 품고 있지만 사실 내용 자체는 전혀 SF적이지 않다. 그저 75세 노작가가 살아온 다양한 삶의 파편들이 아무렇게나 꿰어진 구슬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이어질 뿐이다. 타임퀘이크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우주적 스펙타클이 벌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 그런건 없다. 타임퀘이크는 멍청할 정도로 잘못을 반복하는 인간 역사의 도플갱어일 뿐이다.

커트 보네거트가 '타임퀘이크'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른바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인간들이 현실 세계에서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약탈과 전쟁에 대한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볼 수 있는 인간 역사를 돌이켜 보라. 인간은 지난 수천년 동안 엄청난 진보를 한 것처럼 뽐내지만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의 모습에선 여전히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는 기독교 강도들의 모습이 연상될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거의 예외없이 인간의 역사가 반복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도 인간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커트 보네거트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만약 인간이 1차 세계대전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거대한 불자지 두 마리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강간했고 우리는 지금 다음 차례가 될지도 모르는 침대 위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역시,

타임퀘이크!




애초에 핵폭탄 같은게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로켓, 아니 엔진, 아니 아니 차라리 도구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대가족을 이루고, 벌거벗은 남녀가 벌판을 뛰어다니며 물에서는 물고기를 땅에서는 짐승의 고기를 얻던 시절을 지켰더라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는 순결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보니 어떤 시인이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혀나 펜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슬픈 말 중에서 가장 슬픈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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