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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까지 진보 좌파 - 스콧 니어링 자서전 본문

100세 까지 진보 좌파 - 스콧 니어링 자서전

WiredHusky 2011. 8. 17. 21:41




씐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샤바샤바 알샤바 1982년에 왕자의 고백을 받았을 때, 씐데렐라는 왕자가 강남에 대형 아파트를 해오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왕자는 지방에 수 만 평의 대지와 거대한 성을 갖고 있었지만 강남에 아파트를 살만큼 부자는 아니었다. 결국 왕자는 결혼을 포기했고 고향에 내려가 평생 외롭게 살다 고독하게 죽었다.

이후에 씐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파티장을 누비다 부잣집 놈팽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놈은 사상 최악의 사기꾼 가난뱅이에다 극악무도한 바람둥이였다. 씐데렐라는 화병이 나 2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평소 망자의 유언대로, 무덤 속에는 그 잘나빠진 유리구두 한 켤레가 함께 묻혔다.

당신이 구입한 고급 세단과 대형 아파트는 당신의 무덤을 지키지는 못한다. 당신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상이 더! 더! 더!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일까? 만약 시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이 모든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돈과 지위를 탐하기 보단 당신의 이웃과 가족과 사회를 사랑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해준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바보같은 질문을 한 것 같다.



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의 한 탄광도시를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던 부잣집의 첫째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쌓아 놓은 욕망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물려 받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빈자의 길을 택했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병들어 있었고 자본주의는 결코 인간의 진보를 보장해 주지 못했다.

어떤 시대나 마찬가지로 대세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평생 외롭게 살다 고독하게 죽을 운명을 맞는다. 대세는 자신의 뜻을 거스리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대세가 반골들에게 내리는 최초의 형벌은 바로 사회로부터의 단절이다.

스콧 니어링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아동 노동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9년 동안 일해 온 직장에서 -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직 - 해고 당했다. 어렵게 다시 찾은 교수직도 오래가지 못했다. 출판사와 잡지사들을 더 이상 니어링의 글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중 강연회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니어링 박사는 강연계의 섭외 목록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1917년에는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연방 법정에 피고로 섰다. 죄목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스콧 니어링은 이 세계로 부터 완전히 버림 받았지만 그 자신은 세상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된 탄압과 굴욕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사회주의 이상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 이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걸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영원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 아는가? 그건 이 위대한 이상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외면 당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안된다고 하는 일을 끈덕지게 밀어 부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건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러나 대개는 가족과 친구들이 제일 먼저 등을 돌린다. 스콧 니어링은 자신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부유하고 탐욕스런 인생을 선물 받는 걸 목격했다. 그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인과 별거 중이었다.

경제적 압박은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배를 가로 막는 또 다른 암초다. 스콧 니어링은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던 시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아주 작은 연금을 마련해 두었다. 연금은 결코 넉넉한 액수가 아니었기에 스콧 니어링은 자신의 삶을 철저한 무욕으로 통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인생의 두 번째 동반자인 헬렌을 만난다. 헬렌은 니어링 보다 무려 스무살이나 어린 처녀였으나 누구보다도 그의 신념을 믿고 따랐다.

둘은 곧
시골 마을로 내려가 돌로 된 집을 짓고 농장을 개간했다. 자신이 먹을 음식은 직접 재배했고 남은 음식은 다른 물건과 바꾸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자 쥐꼬리만한 연금도 남 부러울 것 없는 액수가 되었다. 그는 철저한 지출 계획을 세워 한해를 대비했고 만약 다음 해에 써야 할 돈이 마련되면 지체없이 농사를 멈추고 여행을 떠났다.



그는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가난한 자를 쥐어짜는 이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계급사회의 밑바탕에는 '네가 일하고 나는 먹는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이 원칙은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대신 뿔뿔이 떼어놓는다. 이 원칙은 협력의 반명제이다. 미국에 만연해 있는 이 원칙은 오늘날 건강한 공화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독소 가운데 하나이다.'

1983년 8월 24일, 스콧 니어링은 곡기를 끊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딱 100세가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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