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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프라하의 봄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본문

1968년, 프라하의 봄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WiredHusky 2011. 11. 15. 12:13




밀란 쿤데라는 존재의 가벼움이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이 책을 썼다. 하지만 그 존재의 가벼움이 되려 무거운 바위가 되어 읽는 사람의 가슴에 내려 앉는건, 존재의 무게가 가진 최대의 아이러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으면 마치 눈 내리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 든다. 주변은 온통 반복되는 모래 언덕 뿐이다. 모래 언덕을 넘고 넘어 드디어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그 뒤에 펼쳐지는 것은 광활한 모래의
바다. 사막의 뒤에는 사막이 있다. 그런데 이 곳에 온기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뜨거운 모래 위로 차가운 눈이 내린다. 발 밑에는 정신을 태우는 화염이요 머리 위는 온 몸을 굳게 만드는 얼음이다. 누울 수도 설 수도 돌아갈 수도 계속 갈 수도 없다. 막다른 골목이라면 힘껏 온 몸을 부딪혀 보기라도 하겠건만 이건 사방이 뻥 뚫려 있는 공허의 사막이다.






소설 속에서 사막역을 맡은 것은 체코다(그 당시 체코 슬로바키아). 1960~70년대의 체코라고 생각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지구. 강력한 소비에트 연방의 힘으로 동유럽은 온통 공산화 된다. 그러나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비에트 연방의 적색기는 결코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를 자기 것으로 차지하고 싶은 추할 정도로 탐욕스러운 한 남자의 가면이었다. 그는 이 적색기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나라를 유린한다.

체코의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라는 정치 계획을 발표하고 개혁에 착수했다. 언론과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경제면에서는 시장 경제와 통제 경제가 적절히 혼합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이다. 시덥잖은 드라마의 제목이 아닌 것이다.

체코에서 불어오는 봄기운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프라하의 봄은 공산 주의를 수술하려는 날카로운 메스 같았다. 소련은 체코의 국경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개혁을 중지하거나 제약하려는
목적. 그러나 협상은 결렬됐다. 1968년 8월 20일 밤, 20만명의 군대와 2,000대의 탱크가 체코의 국경을 넘었다. 8월 21일 아침, 체코는 완전히 점령당했다.

개혁 정치를 시작했던 둡체크와 정치인들이 모스크바로 체포되었다. 애시당초 둡체크를 실각시키려는 소련의 목적은 체코의 저항이 광범위해지자 당초의 계획을 포기했다. 둡체크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모스크바
의정서에 서명한다. 체코로 돌아와 굴욕적인 연설을 했다.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둡체크와 당시 소련 수상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이 책의 주인공 프란츠와 사비나와 테레자와 토마시가 바로 이 시대에 살았다(밀란 쿤데라의 시대기도 하다). 굴욕의 시대였고 천박한 시절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던 40대의 소설가 얀 프로하즈카는 체제를 비판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언론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설가를 씹어 먹었다. 그럴수록 얀 프로하즈카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더해갔다.

어느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프로하즈카와 한 대학 교수가 나눈 사적인 대담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 대담 속에는 소설가가 그의 친구들을 비웃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방송은 특히 둡체크를 비웃는 대목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애썼다. 대화는 집안에 설치된 도청기에 의해 녹음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한 인간의 권위와 사생활을 유린한 비밀 경찰의 야비함보다 그들이 사랑했던 소설가를 더욱 미워했다. 굴욕의 시대였고, 천박한 시절이었다.

이런 세상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건 말 그대로 인간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적일 수 있을 때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을 때다.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 때다. 하지만 프란츠와 사비나와 테레자와 토마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토마시는 실력있는 외과 의사였다. 토마시는 첫 번째 아내와 결혼하기 전과 후 그리고 심지어 결혼 기간 중에도 수 많은 애인을 갖고 있었다. 토마시는 두 번째 아내와 결혼하기 전과 후 그리고 심지어 결혼 기간 중에도,
역시 수 많은 애인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아내는 테레자였다.

토마시는 섹스와 사랑은 별개라고 말했다. 테레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토마시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테레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소련의 침공 후 제네바로 도피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테레자는 체코에
남기로 했다. 제네바에 홀로 도착한 토마시는 얼마 후 체코로 되돌아 온다. 토마시는 체코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마음으로 부터 울려 퍼지는 이런 소리를 듣는다. '그래야만 하는가?' 토마시가 대답한다. '그래야만 한다!'

토마시는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테레자가 나와 토마시를 만났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체코로 돌아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토마시는 체코로 돌아온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토마시는 귀향을
후회하고 있었다.



                                                                <밀란 쿤데라>


프란츠는 저명한 대학교수로서 아내를 배반하고 제네바에 애인을 갖는다. 사비나는 체코 시절에 토마시가 사랑한 수 많은 애인 중 하나였으나 제네바에서는 프란츠의 애인으로 살아간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사랑했지만 사랑이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군인'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장이 해제된 채로, 온 몸을 내 맡긴 뒤 '언제 공격당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불안에 떠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

프란츠는 아내 마리클로드를 찾아가 이혼을 통보한다. 애초에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다. 프란츠는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리고 경제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프란츠는 아내에게
모든 재산을 양보한다. 프란츠에게는 사비나만이 삶의 무게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에 그 외의 모든 것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클로드는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란츠는 마리클로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리클로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프란츠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영원한 투쟁'이라고도 말했다. 프란츠는 자신에게는 싸울 마음이 털끝 만큼도 없다고 소리 쳤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만나러 제네바로 갔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사랑하며 그녀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다. 프란츠는 완벽한 미래를 꿈꾸며 사비나의 아틀리에를 나섰다. 사비나는 그날 밤 파리로 떠났다. 두 사람은 이후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토마시와 테레자와 프란츠와 사비나의 세계는 그 밀접한 육체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몰이해의 향연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몰이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적극적 해명은 이 세상의 무게를 재는 천칭의 한 쪽
편에 자신의 존재를 올려 놓는 것이다. 천징의 다른 한 쪽에는 거대한 똥 무더기가 올려져 있다. 존재의 합은 우리가 아무리 기를 쓰고 더해 보아도, 결코 똥 무더기의 무게를 이길 수 없다. 해명은 무의미한 것인가? 무의미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 스물 한살 때일 것이다. 그 때 난 온 몸을 강타하는 허무의 박력에 한 동안은 넋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허무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 때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럼 이제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허무란 사방에 가득 차 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걸 두 손으로 꼭 쥘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얼굴을 똑똑히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걸 허무라 부를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가슴 속에 가득 들어찬 빈 공간이다. 빈 공간이기에 손으로 꽉 잡아 내던져 버릴 수도 없고 또 이미 그것으로 가득찬 가슴이기에 다른 것을 채워 넣을 수도 없다. 허무를 아는 사람들은, 이처럼 공허한 포만감으로 가득찬 채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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