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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도 언젠간 식는다 - 문명의 묵시록 '엔트로피' 본문
열역학 제 1법칙과 2법칙은 물질 문영의 한계를 규정하는 과학 법칙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법칙,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제 2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제 1법칙을 살펴 보자. 우주는 광활한가? 광활하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한한가?
무한하지 않다!
우주는 광활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별은 끊임없이 생성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창조가 아니다. 별은 다른 차원의 우주로부터 '뿅'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다. 별은 우주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수 많은 물질을 재료로 탄생한다.
이처럼 에너지는(또는 물질)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할 뿐 창조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우주는 생성될 초기에 갖고 있던 에너지에서 한 톨의 가감도 없이 평생을 살아간다. 가난하게 태어난 우주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부자로 태어난 우주는 평생 부자로 살 수 있다. 삼라만상의 빈부 법칙은 우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인간에게 열역학 제 1법칙만 존재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자원 고갈이나 환경 문제로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됐을 거다. 문제는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우리의 우주에서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기아 자동차의 모닝은 1리터의 휘발류로 19km를 주행할 수 있다. 휘발류 1리터는 모닝의 엔진 내부에서 격렬하게 연소하며 수백 킬로그램의 쇳덩이를 19km 전진 시키고 추가로 그 쇳덩이로 하여금 바닥과 마찰을 일으켜 열과 소음을 발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휘발류는?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탄화수소와 아황산가스로 변신하여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바이 바이 블랙 버드.(Bye bye black bird)
우리는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탄화수소와 아황산가스 그리고 이미 변환된 운동, 열, 소음 에너지를 거꾸로 돌려 휘발류 1리터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낙장불입. 특유의 유용함으로 어디에 사용되더라도 제 몫을 다할 수 있었던 휘발류 1리터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매연이 되버렸다. 열역학에서는 이같은 매연, 유용성 제로의에너지들을 엔트로피라 부른다. 정리해 보자.
휘발류 1리터라는 에너지는 자동차의 엔진 내부에서 연소하며 다양한 찌꺼기와 각종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 변환된 에너지들의 총량은 언제나 이전의 에너지, 즉 석유 1리터의 에너지량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이다.
한편 휘발류 1리터가 유용성 제로의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 그리고 이 에너지는 결코 휘발류 1리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열역학 제 1, 2법칙이 인류에게 제시하는 미래는 참으로 암울하다. 자원은 언젠가 고갈된다. 인류의 역사 또한 언젠가 그 바퀴를 멈출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진보라 불러왔던 모든 일들, 자연을 정복하고 그 위에 올라 승리의 노래를 불렀던 지난 날들이 사실은 우리의 몸을 짓밟고 우리의 생명을 태워 전진시킨 폭주 기관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레미 러프킨은 그동안 우리 인간이 가져왔던 진보에 대한 맹신이 기계론적 사고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에 기계론적 사고관을 최초로 끌어 들인 것은 누구인가? 17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베이컨의 관점은 명확했다. 관찰을 통해 객관적 지식을 발견해 내고 일체의 추상적 관념을 배제하는 것. 베이컨은 장도를 휘둘러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평화의 다리를 싹뚝 잘라 버렸다. 베이컨은 인간과 자연의 평등 관계를 주체(관찰하는 자)와 객체(관찰 당하는 것)라는 주종 관계로 전복시켰다.
베이컨이 기계 패러다임의 초석을 닦자마자 그 위에 집을 지은 것이 바로 데카르트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이성은 유례없이 지위가 향상 된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는 세 단어로 이 세상 전부를 연역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잘 익은 과일을 정성스레 포장해 차곡차곡 상자에 담듯 데카르트는 이 세계를 자신이 짜 놓은 이성의 틀 안에 쓸어 넣기 시작했다. 틀 밖으로 삐져 나온 가지들은 무참히 잘려 나갔다. 변화 무쌍하고, 그리하여 예측 불허였던 이 세계는 데카르트의 상자에 담겨 매끈한 상품이 되었다. 이 상품을 대량 생산해 전 세계에 보급한 사람은, 고전 역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이었다.
아이작 뉴턴에게 있어 세계란 '수'였다. 뉴턴에게 중요한 것은 떨어지는 사과, 그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성과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적,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한 사과의 위치와 속도였다.
뉴턴의 방정식에서는 좌변과 우변이 얼마든지 자리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이 특정 방향으로 진행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한게 아니었다. 모닝이 생산한 엔트로피는 정확히 그 반대 작용을 통해 1리터의 석유로 돌아갈 수 있다! 뉴턴에게 있어 세계란 힘과 운동량, 위치와 속도로 기술 될 수 있는 정교한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현실 세계에 닥친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자동차가 늘어나 교통 정체가 심해졌다고? 그럼 도로를 만들면 되지. 도로를 만들어 농경지가 없어졌다고? 그럼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어! 바다가 메워져 갯벌이 사라졌다고? 그럼...
기계 패러다임의 사고 안에선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켜 결국 거대한 문제의 누더기로 변해버린다. 안타깝지만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대다수는 아직까지 이 패러다임 안에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엔트로피 법칙이 소개된 것은 무려 수 십년도 전의 일이지만 우리의 세계는 이제서야 겨우 그 법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듯 하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대체 에너지 개발 붐과 환경 보호의 목소리는 확실히 10년 전과 비교해 봐도 놀라울 만큼 커졌다.
하지만 우리의 지구는 여전히 기계 패러다임에 심취한 근대적 엘리트들이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쇼핑몰을 운영하고 도시를 계획하며 자동차와 석유를 생산한다. 그들은 제일 먼저 당신에게 자동차를 권한다. 자동차가 불필요한 이동 시간을 줄여주고 더 많은 여가를 보장해 준다고 속삭인다.
자동차를 가진 우리들은 아주 신이 난다. 이제 이동에는 자신있다. 비교적 먼 거리도 자동차만 있다면야 어려움 없이 왕래할 수 있다. 이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도심에 집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근대적 엘리트들은 두 번째로 대도시 인근에 베드 타운을 만들어 자동차를 가진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한다. 두 도시를 잇는 8차선 왕복 도로는 자동차와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에 딸린 사은품이다. 이 사은품 위로 쉴새 없이 석유가 쏟아진다.
한편 베드 타운 안에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다. 예전에는 집 앞 마다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 때는 자동차를 가져갈 필요도 없이 걸어서 그때 그때 필요한 물건을 사 오면 됐었다. 요즘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사은품 위로 석유를 질질 흘리며 대형 쇼핑몰로 향한다. 매번 오는 건 귀찮기 때문에 카트 안에는 일 주일동안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한 물건들이 담긴다. 이 와중에 식료품 점에선 1팩에 2천원하는 냉동 만두가 무려 2팩에 3천원으로 1+1 판촉 행사가 벌어진다. 알뜰한 주부는 무려 천원이나 아낄 수 있다며 냉동 만두 2팩을 집어든다. 그렇게 알뜰한 주부의 식탁엔 공짜 만두 한 팩이 간식으로 올라오고 만두 한 팩의 칼로리를 사이 좋게 나눠 먹은 그 집 식구들은, 전부 돼지가 된다.
이것이 바로 도시와 자동차와 석유와 도로, 그리고 쇼핑몰을 지배하는 자들의 마스터 플랜이다. 이 놀이에 놀아나는 동안 도시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괴물이 되고 그 안에서 인간은 피둥피둥 살이 찐 돼지로 전락한다. 우리는 지금 초 고엔트로피 사회에 살고 있다.
제레미 러프킨의 주장은 당연히 우리 사회를 저엔트로피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쇼핑몰을 몰아 낸 뒤 소상 공인의 슈퍼 마켓을 다시 내 집 앞에 들이는 것. 아주 좋은 생각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열역학 제 2법칙과 제레미 러프킨의 '엔트로피'가 왜 향락 주의자와 낙관론자들의 관심을 피해갔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의아스러웠다. 무슨 소리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열역학 제 2법칙은 인류의 미래에 드리운 암울한 묵시록이다. 우리가 아무리 저엔트로피 사회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끝내는 우주의 에너지 고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해,
태양도 언젠간 식는다.
그 때가 오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무리 저엔트로피 사회를 탄탄하게 구축했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레미 러프킨의 걱정은 뭘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50억년의 시간을(태양이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는 시간) 다 쓰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 미안하지만 태양도 언젠간 죽는다. 그렇다면 그 날이 오기 전까지 흥청망청 즐겨 보자는 생각이 정말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나는 현재처럼 고엔트로피 사회를 유지하려는 낙관론자와 향락주의자들이 열역학 제 2법칙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의아하다. 그 먼 미래를 생각하기엔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너무나 실감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지구를 살리자는 둥 자연을 보호하자는 둥 그 모든 훌륭한 생각들은 사실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게 분명하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면 곤란하지'라는 생각. 어쩌면 이같은 인간의 이기심이, 지구를 구하려는 행동의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p.s - 이 리뷰가 횡설수설 갈피를 못 잡는 이유는 이미 엇나간 문장에 또 다시 애꿎은 문장을 추가하는, 이른바 고엔트로피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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