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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투자법 - 안티 애플이 만든 영화 '잡스'

WiredHusky 2013. 9. 1. 22:34




*있는거 아시죠?


내 보기에 '잡스'는 당신이 지난 3년간 보아온 영화와 앞으로 3년간 보게 될 영화 중 최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당신이 애플의 광팬이고 한 때 스티브 잡스를 정신적, 업무적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이라면 '최악'이라는 평가가 너무나 관대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아마 이들 중 대다수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잡스'가 구글 인베스트먼트와 삼성 창업투자의 돈으로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ecutive Producer 이건희, 감독 세르게이 브린. 이것이 바로 적의 투자법!








사실도 아니고, 재미도 없어요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크게 대학시절, 애플의 창업과 성공, 회사에서 쫓겨남, 픽사의 성공과 애플 복귀, i시리즈 성공(iMac, iPod, iPhone)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초등학생 용 소설 작법 이론을 상기시키지 않아도 이미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5단 전개로 되어 있음에도 영화는 어디에 집중을 해야하고 어디서 힘을 빼야 하는지도 모른채 127분간 하염없이 방황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방황의 화신이었다. 어떻게서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여러 에피소드를 끼워 맞추는데 설상가상 그것들은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다. 역사를 거짓말로 바꿨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줘야 마땅하지만 눈꼽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거짓말로 점철된 소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으로서의 탈출구를 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잡스'는? 이 영화는 과연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했던 걸까!?




정말 여기서 끝내는 건가요?


1999년에 개봉한 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은 '1984 광고' 촬영 현장에서 시작해 1997년 맥월드 엑스포의 기조 연설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1999년에 개봉한 영화가 고작 2년 전인 1997년까지의 역사를 담기에는 시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97분이라는 짧은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넘는 애플의 역사를 아주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잡스'는 30분이나 더 긴 런닝 타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실리콘 밸리의 해적'이 그릴래야 그릴 수 없었던, 그러니까 1997년 잡스의 복귀 이후 그가 이룩한 아이맥, 아이팟, 그리고 대망의 아이폰 신화, 현대 기술 문명을 완전히 해체한 그 혁신적 기기의 탄생 과정을 다뤘어야 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졌고 고로 더 많은 이야기를 다뤄야 할 의무가 있는 '잡스'가 어째서 '실리콘 밸리의 해적'보다도 적은 양의 역사를 다룬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하마터면 세계 미디어 시장을 뒤에서 주물럭거린다는 유대인 음모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뻔 했다!! -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모스크바 태생의 유대인이다.



잡스의 복귀작 아이맥. 이 때부터 잡스와 조니 아이브의 시대가 열린다.




영화는 재앙이었어요, 재앙이요


조니 아이브스 역을 맡은 배우가 최선을 다해 그의 발음을 따라하려고 한 것, 애쉬튼 커처의 외모가 젊은 시절 잡스와 판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단 한개도 없다. 특히 그 엔딩은 피를 토할 정도로 최악이었는데,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혹시 '잡스'가 반지의 제왕과 같은 3부작으로 기획된 것은 아닌가 하여 고군분투 열심히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 허탈함만 더할 뿐이었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기는 커녕 더 파묻어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으니, 오호 애재라 내일 아침 비가 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늘에서 떨구는 잡스의 눈물일 거에요. 돈 있는 분들은 삼성전자나 구글 주식 사두세요. 영화 실패의 반사 이익으로 엄청난 주가 폭등을 기록할지도 몰라.




몇 가지 사실을 바로 잡고 재밌는 얘기를 곁들여 보아요


애플 컴퓨터 탄생시킨 주역 마이크 마쿨라가 9만달러의 투자금을 제안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받는 대신 최고 25만 달러까지 은행 대출 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세일즈맨 기질을 부각시키기 위해 폴 테럴(바이트 숍 주인)과의 에피소드를 비롯 이런 얘기를 추가한 것 같다. 


영화에는 리사 프로젝트에서 물러난 뒤 매킨토시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잡스가 워즈니악에게 합류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워즈는 이때 이미 애플을 관둔 상태였다. 큰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한 워즈니악이 남은 공부를 마저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던 것이다.


광고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전설의 '1984 광고'는 보수적 이사진들에겐 재앙이었다. 그들은 구매해놨던 슈퍼볼 광고 시간을 다른 회사에 되팔기로 결정했고 '1984 광고'는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애플에 놀러온 워즈니악에게 잡스가 이 광고를 보여주게 된다. 워즈는 광고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잡스는 80만 달러라고 말한다. 워즈는 그 자리에서 내가 반을 댈테니 니가 나머지 반을 대서 광고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는데, 광고를 대행한 '샤이엇 데이'가 광고 시간이 팔리지 않았다고 이사진에게 거짓말을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멍청이들을 제외하고는 이 광고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잡스가 리사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집착한 이유는 애플2가 여전히 애플의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플2가 워즈니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잡스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잡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애플2를 지울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작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와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날 때 단 한 주만을 남겨 놓고 모든 주식을 헐값에 팔아치운다. 이때 확보한 현금은 훗날 아주 커다란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그가 이 돈으로 스타워즈의 감독 죠지 루카스의 CG팀을 인수한 것이다. 이 CG팀은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쓸데가 없어 애물단지였고 마침 전 부인에게 지급할 위자료가 필요했던 죠지 루카스가 이를 낼름 팔아버린 것이다. 이 쓸모없는 팀은 몇년 뒤 3D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를 만들고 또 몇 년 뒤에는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애니메이션계의 애플이 된다. 이 CG팀의 이름은 PIXAR였다.


잡스의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길 아멜리오 직접 찾아왔다는 것도 순 거짓말이다. 먼저 연락을 한 건 오히려 스티브 잡스였다. 이때 잡스가 애플 복귀를 거절당하자 그의 절친이자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인 오라클의 회장 '래리 앨리슨'이 30억 달러를 투입해 애플을 적대적 인수하고 CEO 자리에 잡스를 앉힐 계획을 제안한다. 잡스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이 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길 기다렸기 때문이다. 


2년 후 애플은 신형 운영체제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이 때 잡스는 자신의 회사를(NeXT. 운영체제를 갖고 있었음) 애플에 매각하기 위해 평생의 세일즈 기술을 발휘했고 결국 애플의 선택을 받는다. 이때 인수된 운영체제가 현재 모든 아이맥과 맥북에 깔려 있으며 iOS를 탄생시킨 OS X의 전신이다. 







잡스가 매킨토시 팀을 맡은 후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밍 좀 합니까?'라고 물어봤던 사람이 바로 전설적인 엔지니어 앤디 허츠펠트다. 영화에서처럼 그대로 컴퓨터의 코드를 뽑아 데리고 왔던 이 사람은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대부분과 UI 컴포넌트를 개발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들의 원형을 모두 이 사람이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마술사(Software Wizard)라는 직함으로 일했으며 나중에 회사를 옮겨 구글+의 UX를 총괄한다. 





Software Wizard 앤디 허츠펠트. 좌측에서부터 세 번째.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는 데 앞장선 아서 록이 처음부터 잡스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잡스는 아서 록을 아버지로 생각할 정도였다. 잡스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마이크 마쿨라를 비롯, 자신이 아버지라고 여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잡스는 평생 친부모에게 버림 받은 트라우마를 지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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